[천정부지 닥터 코퍼] 전기차·반도체·데이터센터 원가 부담 '쩔쩔'… 전선업계는 휘파람

구리 케이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구리 케이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구리 가격이 45년 만에 최고가를 찍은 가운데 업종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전기차·반도체·데이터센터 등 분야는 원가 부담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반면, 전선업계는 구리 가격 연동제로 타격 없이 매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용 구리 가격은 올 들어 30% 이상 급등하며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t당 1만17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미국의 관세 위협, 파나마·페루 광산 폐쇄, 중국 제련소 감산 등 글로벌 공급 리스크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전기차·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인한 수요 증가가 맞물린 탓이다.

전문가들은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 산업이 향후 5년간 구리 수요를 매년 100만t 이상 추가로 끌어올릴 것으로 관측한다. 공급 차질과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구리 가격 변동성도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전기차 분야 타격이 우려된다. 전기차 모터와 배터리, 인버터 등에 최대 60~80㎏의 구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내연차에 비해 최대 4배가량 많은 수치다. 여기에 충전기·충전소·전력 설비까지 구리가 대량 투입되면서 가격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KGM(KG모빌리티)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바로 차량 가격을 올릴 수는 없다"며 "협력사가 먼저 부담을 떠안고, 그 압박이 누적되면 결국 완성차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는 완성차 업체가 직접 가공하지 않고 협력사를 통해 납품 받는 구조라 1·2·3차 하청 업체가 먼저 충격을 받는다. 현대차 등 완성차에 전기차 모터와 배터리 시스템(BSA)을 납품하는 현대모비스는 중장기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모비스 측은 "구리 가격과 환율 상승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공정 최적화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도 칩 내부 회로를 연결하는 데 구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가 상승 영향권에 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칩 패키징 단계에서 구리 기둥을 활용해 반도체 기판과 주 기판을 연결한다. 업계에선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으로 보지만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구리 가격 협상에서 불리해질 것으로 걱정한다. 

최근 우후죽순 설립되는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내부 배선을 연결하는 케이블이나 송전망 등에 구리가 대량 사용된다. 평균적으로 1GW 규모 데이터센터에 5500t 정도 쓰인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 대응력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패키징 단계에서 내선에 들어가는 게 모두 구리이고 데이터센터는 전선을 많이 사용해 구리가 많이 필요하다"며 "결국 구리값 상승이 이어진다면 기업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반면 구리가 원가의 60~90%를 차지하는 전선업계는 가격 상승 분을 제품 출고가에 전가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송전망·변전 설비 확충에 필수적인 구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된다.

국내 전선업계 빅2 실적도 고공 행진 중이다. LS전선과 대한전선의 올해 매출은 각각 7조5000억원, 3조5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구리 가격 상승은 AI 시대 전력 인프라 구조 재편에 따른 장기 사이클과 맞물린 것"이라며 "다만 장기적으로 구리 공급 불균형이 지속될 경우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