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시사평론가]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아버지의 말씀
박근혜는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성대한 취임식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행이 되었고, 당시 필자의 아버지는 TV를 통해 굳은 표정으로 취임식 시청을 하셨다.
다음날 아침, 진중한 목소리로 필자를 부르셨다.
직감적으로 또 늘 하시던 말씀을 되풀이하시겠거니 해서 무릎 꿇었다. 아버지는 진지했다.
“만약에 저놈들이 잡아가거든, 묵비! 단식! 자해! 알았지? 그래야 이긴다!”
“아이고~ 아버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녜요~”
“잔말 말고 따라 해! 이놈아~ 묵비! 단식! 자해!”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다는 해주(海州) 최(崔)씨 고집이 어디 가겠는가? 필자는 아들에게 자해를 강요(?)하는 이 늙으신 아버지의 고집에 기가 막혀하면서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예, 묵비! 단식! 자해!”
9살 먹은 아들은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생경한가보다. 눈만 껌벅인다.
유튜브가 아직 한국에서 대중화되기 전이었던 2009년, 필자는 시사개그맨 노정렬과 함께 인터넷방송을 통해 <개구쟁이(開口爭理)>라는 일종의 시사토크쇼를 진행하며 이명박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전형적인 ‘공안몰이’로 민주진보진영을 공격했고, 일반 방송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대놓고 비판하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아직 제대로 갖춰진 플랫폼은 아니었지만, 시사개그 프로그램 <개구쟁이>는 꽤 호응이 좋았다.
물론 아버지께서도 이 프로그램을 보시고 이 시기부터 묵비와 단식과 자해를 강조 하셨다. 그래야 이긴다는 당부와 함께.
독재정권은 필연적으로 군인의 폭력을 동원한다
당신께서 이렇게까지 시대를 거스르며 ‘투쟁심’을 북돋우신 것은 이유가 있다. 4.19 주최 멤버이자 DJ의 정치조직 ‘민주헌정연구회’의 전국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시며 숱한 탄압을 겪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중앙정보부, 전두환 시절에는 국가안전기획부라는 권력의 사조직은 순전히 정적을 때려잡기 위한 조직이었다. 아버지와 그 동료들은 숱하게 잡혀가 고문당하고 수배 되고 투옥되었다.
그나마 이런 민간조직(?)은 나은 편이다. 지금의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군인도 아닌 민간인인 아버지를 백주대낮에 광화문에서 납치해서 저 유명한 남한산성에서 고문했다.
"전라도 새끼도 아닌 놈이 왜 김대중에게 충성해?"
"바른대로 대라! 너 빨갱이지~"
여기서 바로 ‘묵비, 단식, 자해’가 나온다. 온갖 모욕과 몽둥이찜질이 가해졌고 여러 번 까무러친 아버지는 버티다, 버티다 못해 이제는 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묵비를 하고 단식을 하셨다. 그리고 급기야 나중에는 책상 모서리든 벽이든 머리를 부딪치며 '자해'를 하셨다. 보안사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독종'을 납치한 것이고(나중에 들으니 아버지 별명이 '거머리'였단다) 혹여나 (민헌연 전국운영위원장이기 때문에) 죽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군인들이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고문하던 군인에게 "아예 죽여 달라! 나 이 세상에 이젠 정나미 떨어졌다. 죽어서 하나님 품에 편히 안기고 싶다"라면서 대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아버지를 납치한 것처럼 충무로 백병원에 갖다 ‘버렸다’
이 사건이 1985년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겨우 40년 전 일이다. 언론에 한 줄 나지 않은 이 사건은 사실 DJ가 12대 총선 직전인 85년 2월 8일, 귀국해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자, 전두환 정권은 다시 ‘국가내란음모’ 혐의를 씌워 DJ를 죽이려던 사건이었다. DJ의 사조직에서 일을 꾸미었다고 해야 말이 되기 때문에 첫 타겟이 바로 전국운영위원장이었던 필자의 아버지였다. 독재정권의 폭력에 자주 노출되었던 필자의 아버지는 2014년 유명을 달리 하셨다. 고문 중에서도 버티던 강골체력이었지만, 의외로 일찍 돌아가셨다. 향년 74세.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기 10년 전이었다.
국민의힘, 노상원을 삭제하다
12.3 비상계엄 1년이 지났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구속되었고 관련자들 역시 감옥에 가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장동혁 대표를 중심으로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한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계엄을 사과하면서도 민주당을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역할 분담이란다. 헐~ 25명의 국힘 의원들은 계엄에 대해 비판하면서 국민들에게 사과했고, ‘원조 친윤’이라고 불리던 윤한홍 의원은 ‘혼용무도 이재명 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에서 계엄을 사과하고 尹과 절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콩가루’ 정당이다. 보수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창피해서 이제 지지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기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그 누구도 ‘노상원’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노상원은 삭제의 대상이다. 필자는 숱하게 TV토론을 했지만 국민의힘 쪽을 대변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노상원’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상원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단어가 피 냄새가 진하게 나는 ‘야구방망이’ 또는 ‘케이블 타이’나 ‘안대’, ‘복면’, ‘밧줄’ 등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언론 보도의 양이 다른 사건들에 비해 적다고, ‘노상원’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성공률 93.3%를 자랑하는 세계 친위쿠데타가 윤석열 세력에 의해 2%p 낮춰진 91.3%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노상원으로 대표되는 폭력의 DNA를 무시할 수 없다.
불법적인 12.3 비상계엄은 명백히 내란이며,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은 군부 폭력의 상징 ‘노상원’과 함께 삭제되어야 한다.
12.3 내란의 밤, 밤새 뛰어다니며 아버지가 떠올랐다. 묵비, 단식, 자해를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KBS 뉴스애널리스트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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