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韓 해운, 창조적 파괴와 혁신 통해 새 길 열어야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아주경제DB]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아주경제DB]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창조적 파괴' 개념을 통해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공동 수상자인 피터 하윗 교수는 '시장 선도 기업들의 지속적 혁신을 위해 경쟁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지프 슘페터의 이론을 계승한 '슘페터리언' 접근법으로, 파괴와 혁신을 성장의 필연적 동력으로 본다.

이러한 논의는 현재의 한국 해운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는 이미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이미 들어와 있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에서 시작해 클라우드, 금융, 미디어, 우주산업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테슬라는 전기자동차를 넘어 AI와 로봇, 우주 개발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을 재편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기존 업종의 틀을 넘어 고객 문제 해결 중심의 플랫폼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반면 한국 해운업계는 여전히 전통적인 프레임에 갇혀 있다. 특히 여전히 인수합병(M&A)에 대한 거부감, 외부 자본과 기업의 진입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구조적 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 1~5위 해운사들은 지난 20여 년간 적극적인 M&A를 통해 글로벌 해운물류 공급망을 장악해 왔다.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량의 84%를 상위 10개 해운사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규모의 경제와 통합 전략이 해운업의 생존 요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국적선사 HMM의 민영화 문제는 단순한 소유권 이전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해운기업 이외 기업의 HMM 인수를 두고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으나 이는 '해운은 해운인이 경영해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조·물류·금융 등 다양한 업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경쟁력을 창출하고 있다. 이제 한 업종에만 머무는 경영 전략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독일 DP-DHL은 항공·해운·철도·포워딩·통관 등 전방위적인 엔드 투 엔드(end-to-end)의 화주기업 문제해결 중심의 종합적인 물류 서비스를 갖추며 세계 1위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덴마크 머스크 역시 해운뿐 아니라 △항만 △항공 △공급망 △디지털 물류까지 통합해 경기 변동에 강한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위기 시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은 유연한 변화와 확장 전략을 실현한 기업들이다.

반면 한국 해운산업은 아직도 과거의 성공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사례에서 보듯이 변화에 둔감했던 결과는 파산과 국유화 및 공기업 위탁관리라는 뼈아픈 현실로 되돌아왔다. 지금의 HMM이 다시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면 창조적 파괴를 통한 체질 개선과 민간 중심의 경영 전환이 시급하다.

또 기득권 보호와 시장 진입 장벽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안전한 경영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열린 시장, 유연한 사고, 다각화된 사업 전략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해운기업이 가져야 할 생존 조건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해운산업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더이상 '항해만 잘하는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술, 자본, 서비스가 융합된 종합물류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통해야만 제2의 도약이 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감내하는 진정한 용기다. 해운업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산업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통찰과 실행력이 한국 해운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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