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로서 다른 민족의 자유를 위해 싸운 인물의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기자와 만난 카롤리 가스파르 대학 (Károli Gáspár University of the Reformed Church)의 한국학과장 초머 모세(Csoma Mózes) 전 주한헝가리대사는 내년 초 한국 독립운동사에 숨겨진 헝가리인의 실존을 다룬 책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헝가리인이 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초머 전 대사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며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헝가리처럼 강대국 사이에 있으면서도 주권과 문화를 지켜온 한국의 역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는 1970년대 초 북한에서 유학한 가보르 오슈바트(Gábor Osváth) 교수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며 한때 '평양식 억양'으로 한국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학문적 기반을 쌓은 그는 헝가리 최초의 한국학과를 설립해 초대 학과장을 맡았고, 2018년부터 주한헝가리대사로 부임했다. 재임 중 부다페스트–인천 직항노선을 개설하고 한·헝 친선협회와 주한헝가리문화원을 설립하는 등 양국 관계의 토대를 마련했다. 임기를 마친 뒤 부다페스트 카롤리 가슈파르대학교에 헝가리 내 두 번째 한국학과를 신설하고 학과장으로 복귀한 그는, 최근 한국 독립운동에 참여한 헝가리인의 실존을 추적하며 논문을 발표했고 저서 출판도 앞두고 있다.
그는 "10여 년 전, 1950년대 헝가리에서 공부했던 북한 유학생들을 연구하던 중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6·25 전쟁 이후 헝가리에 체류하던 북한 유학생들 중 일부가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대학생들의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 학생들은 전쟁 경험이 있어 무기 사용법에 능했고, 그 지식을 헝가리 학생들에게 전해줬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를 계기로 그는 한국 독립운동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진 헝가리인 '마자르(Magyar)'의 존재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동안 마자르라는 인물은 독립운동가들의 폭탄 제조를 도왔던 외국인으로, '마자르'가 헝가리인을 뜻하는 단어라는 이유로 헝가리인으로 추정돼 왔다.
그는 "영화 <밀정>에서 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헝가리인이 존재했는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졌다. 2019년 한·헝 수교 3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도 마자르 관련 발표가 있었고, '이 인물이 실존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겨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머 전 대사는 "마자르는 헝가리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헝가리에서 흔한 성씨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순히 헝가리인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실존 인물의 이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그가 언급된 주요 사료는 박태원 작가의 『약산과 의열단』(1947)이다. 이 책은 마자르가 실존 인물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단서였다"고 설명했다.
또 "그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몽골에서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간 기록이 있었다. 이처럼 행적을 살펴보면 이례적이고 특이한 이동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그 시기의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과 헝가리인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던 중 '가보르 요제프 마자르(Gábor József Magyar)'라는 인물의 기록이 한국 독립운동을 도왔다고 알려진 의문의 헝가리인과 일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실존 인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에 확보한 자료에는 마자르의 이후 삶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한국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이 부분은 출간 예정인 책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초머 전 대사는 북한 연구의 권위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주한헝가리대사 재직 시기 남북한 겸임대사를 지냈으며, 평양을 네 차례 방문했다. "북한에 갔을 때 1970~80년대 루마니아 사회가 떠올랐다. 1980년대 후반 가족과 함께 루마니아를 여행하며 경험했던 강한 통제, 개인숭배, 폐쇄적 경제 구조 등이 북한의 분위기와 거의 같았다. 당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은 김일성 체제와 구조적으로 유사해 북한이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 여부에 대해 "김정은은 외국 대사들과 거의 만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만난 적은 없다. 2019년 신임장을 제출할 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초머 전 대사는 북한 외무성 헝가리 담당 국장과의 에피소드도 전했다. "면담을 마칠 무렵 그 국장이 웃으며 '대사 동지의 조선말은 아주 훌륭하지만, 그건 우리 조선말이 아니다. 다음에는 좀 더 우리식 조선말을 배우시고 남쪽 사람들에게도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한때 평양 사투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나도 웃었다"고 말했다.
남북한을 모두 연구해온 학자로서 그는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정치체제와 이념의 차이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일상적인 사고방식과 언어 습관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평양에서도 시민들을 만나면 남한 사람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 김일성 배지만 없다면 거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체제는 달라도 사람은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통일이 실현된다면 처음엔 어렵겠지만 사람들 간의 통합은 생각보다 수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향후 연구 방향에 대해 그는 "남북한이 같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는가를 비교하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주제다. 같은 인물을 다르게 부르고 서로 다른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밝혔다. "이런 비교문화 연구는 분단 이후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기에, 앞으로도 공식 관점 비교 연구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초머 전 대사가 이끄는 부다페스트 카롤리대학 한국학과는 현재 유럽 내 한국학의 토대를 넓혀가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학 특별과정'으로 시작했고, 2024년 9월부터 정규 학부과정이 개설됐다. 첫해 40명의 신입생을 선발했고, 올해는 2기 학생까지 합쳐 현재 약 80명이 재학 중이다"라며 2027년 6월 첫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초머 전 대사는 20세기 남북한 대중문화의 발전 비교를 주제로 한 강의를 직접 맡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남북한의 영화·음악·드라마를 비교하며 같은 시기의 사회 분위기를 함께 읽는 수업"이라고 소개했다.
2029년 한·헝 수교 40주년을 앞두고 그는 "2027년까지 석사과정을 개설해 카롤리대학교를 헝가리 내 한국학 연구의 중심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라며 "외교관으로서의 경험과 학자로서의 시각을 살려 양국 관계가 앞으로 더 깊이 이어지도록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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