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정치권이 연구개발(R&D) 분야 등 주 52시간 근무 적용 예외 조항이 담긴 반도체 특별법의 통과 여부를 놓고 논쟁을 시작하자 중소벤처기업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생산성 저하를 막기 위해 핵심 인력에 한해 시행돼야 한다는 게 주된 논리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 적용 예외조항이 빠진 법안을 11월 중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예외조항을 포함한 법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다음 달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본회의 문턱을 넘을 반도체법에 주 52시간제 제외 조항은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주 52시간제 제외 조항은 필요하지 않다는 데 강경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도는 1주 법정근로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합해 최대 52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제도다. 2018년 300인 이상 공공기관부터 시행을 시작해 점차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주 52시간 제도 계도기간이 종료돼 시행 중이다.
제조업이 대다수인 중소기업에게는 주 52시간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위탁거래가 많아 근로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성 하락의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경영 악화로 이어진다는 게 주된 의견이다. 실제로 한국은 노동생산성도 높지 않다. 한국의 근로시간당 GDP 지표는 51달러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4.3달러)에 못 미치는 26위(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
중소벤처기업계에서는 주 52시간제 예외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하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중소기업계 숙원과제 중 하나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제시했으며 7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상견례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제시한 바 있다.
벤처기업협회가 벤처기업 재직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70.4%(매우 있다 30.2%·어느 정도 있다 40.2%)는 충분한 보상이 제공될 경우 주 52시간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응답기업의 55.8%는 유연근무제를 활용 중이라고 응답했고, 이 중 시차출근제(38.2%)와 탄력근무제(26.6%)의 활용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전략기획'(81.2%), R&D(80.0%) 직무군에서 긍정 응답 비율이 높게 나타났고, '재무·회계' 직무는 62.4%로 비교적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 52시간 적용도 직군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은 "벤처기업은 유연하고 자율적인 문화로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지만, 벤처기업들이 성장하려면 현재의 강점은 유지하되, 보상과 시스템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도'로 자율적 열정과 유연성이 무기인 벤처기업의 문화가 훼손되고, 생산성 악화 및 핵심 경쟁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벤처기업의 핵심인력에 대해서는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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