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통일부에 대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10.14)에서 남북한 '두 국가론'을 계속 주장할 것이냐는 질문에 정동영 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론”이란, ‘평화적인 두 국가를 제도화함으로써 통일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말은 통일을 위해 먼저 평화적 두 국가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두 국가’는 남북한 관계의 형식이며, ‘평화’는 남북한 사이의 실질적이며 내용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북한을 법률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장관 자신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두 번째로 통일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남북한은 적대적 관계를 지양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실질적 교류·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평화적 두 국가 관계’가 남북 사이의 '잠정적 특수관계'와 다르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둘 다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만드는 과도적 형식 관계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장관도 이 둘은 “정확히 같은 의견"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관계 속에서의 두 국가론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잠정적’이라는 것은 현재의 남북분단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도기적 상태라는 의미다. 비록 북한을 외국이 아닌 대한민국 영토 내의 미수복 지역으로 간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별개의 국가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북한이 유엔에 독립된 국가로서 동시 가입해 있으며, 각종 스포츠 등 국제교류에 각기 별개의 나라로 참가하고 있는 점 등이 이를 증명한다. 한편, ‘특수관계’라는 것은 남·북한이 비록 유엔에 동시 가입해 있는 국가지만 국가 간 외교관계처럼 대사관을 설치하거나 국제법상 조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아닌 남북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교류·협력합의서 등의 방식으로 관계를 지칭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분리된 실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통일의 바탕과 수단이 되는 공존과 협력을 우선시하자는 것이다.
‘평화적 두 국가론’과 연결하여 제기되는 논쟁, 특히 통일과 관련된 논쟁을 풀어가는 데 있어, 동서독의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통일 과정에서 서독은 동독을 법적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독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설정했다. 서독의 헌법(Grundgesetz, 기본법)은 동독을 독일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는 동시에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적 틀(제23조)을 마련해 두었다. 독일 통일은 이 조항을 활용해 동독 지역이 서독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이전 서독은 동독과 교류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교류·협력을 통해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자유와 번영을 직접 경험했다. 동서독 통일 앞에서 동독 주민이 원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통일을 이루어 서독처럼 잘살고 싶었고, 둘째는 서독 사람들과 같이 서방 국가들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것이었다. 통일의 방향과 체제를 결정한 것은 국가가 아니었다. 동독 주민들이었다. 동서독 통일은 중단 없는 교류·협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교류는 단순한 접촉이 아닌, 체제 비교와 가치 확산의 통로였고, 통일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핵심축이었다.
남북한 평화적 두 국가 관계는 통일의 포기 선언이 아니다. 또한 헌법 위반도 아니다. 북한에 굴종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더욱 부당하다. 북한과 대화와 교류·협력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1989년 동서독 장벽이 무너진 지 벌써 36년째다. 한 세대를 훨씬 넘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어떤가? 필자는 1991년 4월 통일연구원 근무를 시작했다. 1990년 9월부터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드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참여했다. 남북한은 1991년 12월 13일 기본합의서에 합의했으며, 평양에서 열린 제6차 회담(1992.2.19)에서 양측 수석대표가 서명함으로써 공식 발효시켰다. 당시 남북 간의 관계는 이미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였다. 남북화해와 불가침과 함께 교류와 협력을 하자고 했다. 철도와 도로 연결도 벌써 그때 합의한 사항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가? 통일은 아니라도 서로 편히 오갈 수 있는 상태는 되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통일보다는 통일과 같은 상태를 먼저 만들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이라는 목표보다 먼저 통일에 가까운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 돌아앉은 북한을 먼저 돌려 앉게 하는 일이 급하다. 통일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념적 우월성만 고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통일의 과정은 살아 움직여야 한다. ‘하나’가 되기 전에, 함께 살아가는 방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곧 APEC 회의가 개최된다. 북·미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짐으로써 남북관계 해빙의 출발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