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상업 작업과 단편 영화를 오가며 다져온 감각, 그리고 같은 시각예술가로서의 공감은 코버트가 제프 맥페트리지의 삶을 깊이 있게 포착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첫 장편을 완성하기까지의 도전과 배움, 그리고 예술가를 기록하는 일이 결국 자기 자신을 비추는 과정임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디자인을 해왔던 감각이 영화 연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 디자이너로서의 경험과 제프의 작업에 대한 이해 덕분에 큰 이점이 있었다. 영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그의 세계와 맥락을 잘 알고 있었고, 제가 같은 영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여러 시각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 스스로도 예술가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저는 예술가로서 제프보다 10년쯤 뒤처져 있고 명성이나 재능에서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텅 빈 방에서 하루 20시간 동안 그림만 그리며 느끼는 두려움과 희망, 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또한 예술적 커리어와 상업적 작업을 동시에 병행하는 어려움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맥페트리지를 카메라에 담으며 발견한 작품 너머의 인간적인 모습은 무엇이었나. 감독으로서 맥페트리지를 관찰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 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에 가치를 두며, 어디에 시간을 쓰는지가 그의 성격과 삶을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었고, 그동안 세상은 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을 거다. 감독으로서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영광을 느꼈다.
작업을 하면서 맥페트리지에게 가장 크게 배운 건 뭔가. 그와의 작업이 당신의 시각이나 인생관에도 영향을 주었나
- 그와 함께하면서 제 일상의 시간을 더 의식적으로 균형 있게 쓰게 되었고, 인생에서 큰 부분을 무엇에 쓸지 신중히 고민하게 됐다. 지금은 감독이자 사업가, 그리고 시각 예술가로서 시간을 나누어 쓰며 그 과정 속에서 각각의 영역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댄 코버트가 생각하는 “좋은 아티스트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만든 작업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게 해주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다른 창작자나 주제를 다큐멘터리로 담고 싶은 계획이 있나
- 다른 시각 예술가의 삶을 다룬 장편을 다시 만들 계획은 지금은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이번 경험이 너무 특별했기 때문에 비슷한 걸 반복하는 건 오히려 아쉬울 것 같다. 다만 음악가, 감독, 혹은 다른 유형의 창작자라면 관심이 있다. 요즘에는 내 첫 극영화를 집필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동시에 다른 가능성에도 마음을 열어두고 있다.
감독으로서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지켜온 원칙은 무엇인가
- 이 영화를 끝까지 완성하는 것은 더 큰 꿈에 헌신하는 과정이었다. 모두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하는데 제가 계속 해왔던 말은 언젠가 장편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제가 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저는 서른일곱 살이었고, 마흔 번째 생일이 멀지 않았을 때 이 영화를 시작했고, 끝낼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는 계속 나아갔고 눈앞의 과제를 하나씩 해냈다. 거대한 벽을 세우겠다고 겁을 먹는 게 아니라 벽돌을 하나씩 쌓아간 셈이었다. 광고와 단편 영화는 몇 주나 몇 달 만에 완성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제작에 4년, 개봉까지 1년이 더 걸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내와 훈련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저는 매 순간 훌륭한 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당신에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이나 여운은 무엇인가
- “다음엔 어떤 큰 프로젝트에 내 삶을 바칠 것인가?” 그리고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였다.
예술가들을 기록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기록하는 일과도 닮아 있다. 이 작품은 당신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나
- 정확한 지적이다. 이 영화는 제프만큼이나 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저는 마흔이 되었고, 제프는 쉰이 되었다. 결국 40살의 제가 50살의 제프를 기록하면서 우리 모두가 던지는 보편적인 질문을 나눈 셈이다. 바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영화의 주제들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할 수 있었고, 제프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제 삶과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수많은 기록가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 나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에서 “만약 당신이 처음에 만들려고 했던 그대로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당신은 듣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 함께 작업하는 팀, 세상, 관객, 그리고 자기 자신과 영화 자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저는 진심으로 영화가 스스로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 영화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믿고, 귀 기울이고,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영화는 스스로가 되어야 할 모습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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