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보유액을 줄이지 않는 범위에서 조달 가능한 최대 대미 직접투자 금액이 연간 최대 200억 달러(약 28조원)수준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3500억달러(약 491조원)를 '선불'로 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를 이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한은은 29일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외환보유액 감소 없이 연간 조달 가능한 대미 직접 투자 금액은 200억 달러라고 밝혔다.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를 3년 내 집행할 경우 연평균 1167억 달러의 외화자금이 필요한데, 연간 200억 달러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한은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한 법률 리스크 해소를 전제할 경우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외환 시장매입 등 외환보유액 감소를 초래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는 외환당국의 자금은 연간 150억달러(21조원) 내외"라고 말했다. 민간 부문의 경우에도 "정책금융기관의 한국계 외화채권(KP)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는 있으나 조달 가능 금액은 연간 50억달러(7조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3500억 달러를 3년 내 집행할 경우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어 외환시장에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 일본의 대미투자 규모 5500억 달러(771조원)는 일본 경상수지의 2.8배, 순대외금융자산의 15.7%, 외환보유액의 41.5%,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3.7% 수준이다. 반면 한국이 요구받은 대미투자 규모 3500억달러는 경상수지의 3.5배, 순대외금융자산의 34.0%, 외환보유액의 84.1%, 명목 GDP의 18.7%에 달한다.
더구나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이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상시 보유하는 대외지급 준비자산으로 해외 직접투자한 사례가 없다.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한국투자공사(KIC) 등에 위탁하고 있지만, 이 경우 외환보유액의 성격이 유지되도록 운용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오 의원은 "외환보유액의 80% 이상을 선불로 투자하라는 요구는 한국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며 "한·미 양국은 현실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에서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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