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본시장에 토종 사모펀드(ETF)가 등장한 건 2004년 12월이다. 미래에셋 계열 자산운용사가 만든 1000억원 규모 PEF였다. 이후 PEF는 자본시장을 넘어 산업 재편 과정에서 혁혁한 역할을 해냈다. 규모도 커졌다. 지난 20년간 국내 PEF 약정액은 340배, 운용사 숫자는 1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특히 2010년을 전후해 인수합병(M&A) 시장은 PEF를 빼놓고는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을 키웠다.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이에 2000년대 초반 론스타 등 일부 외국계 PEF의 '기업 사냥'에 부정적이던 여론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는 순기능도 했다.
그랬던 토종 PEF가 20년 만에 도마에 올랐다. 홈플러스, 롯데카드 사태를 둘러싼 MBK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사모펀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등하다. '투기지본' '탐욕자본'이란 비판이 쏟아지면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는 여론에 점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순기능 인정받던 토종 PEF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사모펀드(PEF)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론스타 영향이 컸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면서 'PEF=투기자본'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후 소버린의 SK 경영권 개입 분쟁이 뒤따르면서 이런 인식은 확산됐다. 정부가 토종 PEF 제도 정비에 나선 건 이 무렵이다. 외국계 PEF의 잇단 기업 사들이기를 보면서 토종 PEF를 키워 국내 자본시장과 산업 재편을 활성화하자는 게 당시 정부의 생각이었다. 2004년 말 처음 PEF 제도가 도입된 이후 토종 PEF는 순기능을 많이 했다. 자금 조달 경로를 다양화하며 국내 자본시장 외연을 넓혔고 기업 구조조정, 인수합병, 비상장기업 육성 등 전략적 투자자 역할도 해냈다. 공공부문 주도의 성장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IPO 시장이 침체됐던 시기에도 사모펀드는 경영 개선 여지가 있는 중소·중견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시장 내 성과를 입증했다. 대표적 사례로 IMM PE의 태림포장 인수 후 매각, 한앤컴퍼니의 대한항공 기내식·기내면세점 부문 인수 후 매각 등이 거론된다.
순기능이 인정받으면서 토종 PEF는 급성장했다. 제도 도입 20년 만에 펀드 약정액은 340배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 수도 1137개로 2017년(444개) 대비 2.5배 이상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작년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 약정액은 154조원에 달했고 2023년보다 17조원 늘었다”고 말했다.
MBK가 초래한 '투기자본' 논란
하지만 최근 PEF를 둘러싼 시각은 부정적으로 기울고 있다. 발단은 MBK파트너스가 제공했다. MBK는 2015년 영국 테스코에서 홈플러스를 약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매출 부진, 비용 절감 중심의 운영, 유휴 부동산 매각 등이 이어졌고, 결국 2024년 12월 홈플러스는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신청했다. 이에 더해 롯데카드 해킹 사태가 터지면서 MBK는 뭇매를 맞고 있다. MBK가 2019년 롯데카드 인수 이후 정보 보호 예산을 줄이는 등 투자에 미흡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규제 강화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사모펀드의 차입 한도를 순자산 대비 400%에서 200%로 낮추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 측은 “과도한 차입 구조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시장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책임 있는 투자 운용 질서를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규제에 대한 신중론도 적지 않다.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 시야의 기업 경영, 지나친 부채 확대, 공격적 주주환원 등은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다른 지배주주 아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며 “무리한 차입 기반 인수나 자산매각 유동화를 통한 과도한 주주환원을 제한하고자 한다면 자본시장법이 아닌 상법 개정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