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대부분 국가를 대상으로 부과한 ‘상호관세’에 대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힌 가운데 보수 성향이 우세한 연방 대법원이 이를 뒤집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상호관세가 무효화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를 강화하거나 다른 법률을 근거로 고율 관세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9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해 여러 조치를 취할 중대한 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한다”면서도 “이들 중 어떤 조치도 명시적으로 관세, 관세 부과금,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을 부과하거나 과세할 권한을 포함하지는 않는다”며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관세 부과 권한이 의회에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근거로 시행한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한 지난 5월 28일 국제무역법원(USCIT) 판결에 대한 정부의 항소심 결과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발하며 대법원 상고 방침을 밝혔다. 그는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이들 관세가 사라지면 국가에 총체적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대법원의 도움 아래 우리는 그것(관세)들을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도록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도 법원 제출 문건에서 “관세 철회는 미국의 재정적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6대 3의 보수 우위 구도로 트럼프 행정부에 유리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BC는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판결을 뒤집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게 된다고 짚었다.
이번 판결은 상호관세에만 국한되며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품목에 부과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 관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대신 232조 품목별 관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로펌 리드 스미스의 마이크 로웰 파트너는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는 트럼프의 관세 전략의 핵심”이라며 “그것들은 현재 소송 대상이 아니고,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부과된 철강·알루미늄 관세에서 보았듯 차기 행정부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CNBC에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산업 관세를 확대해 법적 공방을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무역법 122조와 301조를 활용해 고율 관세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백악관은 지난 5월 1심 패소 당시 122조로 최대 5개월의 시간을 번 뒤 301조를 활용해 국가별로 장기적이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구상을 설명한 바 있다.
1974년 제정된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에게 무역적자나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응해 특정 국가에 한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한다. 최대 15%의 관세를 150일(약 5개월) 동안만 부과할 수 있으며, 기간을 연장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나 기업이 미국 기업에 차별적 대우를 하거나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 무역 관행을 저질렀다고 판단될 경우, 무역대표부(USTR)가 조사를 거쳐 대통령이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국가별로 개별 조사가 필요해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미국 ABC방송은 대법원이 관세를 불법이라고 최종 판단할 경우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다른 법적 수단은 존재하지만 그 범위는 훨씬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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