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中企다?(下)] 협업 맺은 뒤 기술탈취…중기, 소송 시달리다 폐업까지

  • 10년 넘기는 침해 소송 비일비재

  • 전문가 입증·손해액 산정이 핵심

  • '한국형 디스커버리' 법안 통과를

대기업-중소기업 기술분쟁 주요 사례 자료재단법인 경청
대기업·중소기업 기술분쟁 주요 사례 [자료=재단법인 경청]
"동지에서 적으로"

협업을 빌미로 상대 기업의 핵심기술을 탈취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

첫 만남은 좋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협업을 맺은 뒤 주요 기술을 확보하고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버리는 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이익은 피해 기업에게 돌아간다.

소송은 1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지만 진척은 없고, 피해를 호소한 기업 중에서는 폐업하는 사례도 있다.

7일 아주경제가 종합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한화와 에스제이이노테크의 기술 분쟁은 14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양측은 지난 2011년 에스제이이노테크와 태양광 스크린프린터를 제조 위탁하는 합의서를 체결했고, 한화와 하도급 계약을 맺은 에스제이이노테크는 스크린프린터의 핵심 기술 자료를 한화에 제공했다.

하지만 한화는 에스제이이노테크 스크린프린터와 유사한 제품을 제작해 한화큐셀 말레이시아 법인에 출하했다. 에스제이이노테크 측은 2018년 한화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21년 법원은 에스제이이노테크의 손을 들어 한화에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지불할 것을 선고했지만, 배상금은 지불되지 않았다. 

진학사와 텐덤도 기술 분쟁을 매듭짓지 못했다. 텐덤은 2018년 진학사와 대학 리뷰 서비스와 관련한 MOU를 체결하고 데이터, API 등을 제공했다.

분쟁의 시작은 역시나 '표절'이었다. 진학사는 협력기간 중 사전 승인 없이 텐덤의 리뷰 플랫폼과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했다. 법원에서는 진학사에게 성과물 침해에 따른 2000만원을 텐덤 측에 전달하라고 선고했지만 진학사는 이에 불복하고 상고를 제기했다.

공장 문을 닫은 곳도 있다. 퀀텀은 지난 2013년 태국 치앙마이 현장답사를 통해 횡금누에를 활용한 마스크팩용 황금누에 생사 실크 시트를 태국 현지법인과 공동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3년 후인 2016년 국내 마스크팩 1위 기업이었던 피앤씨랩스와 1년간 최소수량 1200만 장을 공급하는 조건으로 독점공급 계약 및 비밀유지의무를 체결했지만, 피앤씨랩스는 태국법인을 방문해 공정시설과 제조방법 등 영업비밀을 취득했고 2018년 퀀텀 측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퀀텀은 피앤씨랩스를 부정경쟁행위로 형사고소했지만, 결국 지난해 12월 자본잠식으로 폐업을 신청했다. 퀀텀을 이끌던 김태일 대표는 고심 끝에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김태일 퀀텀 대표는 "올해 초 검찰 측에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들려오는 소식이 없다"며 "기술탈취 건을 다루는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태도와 무능함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기술탈취 소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속도'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유관 기관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소송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요구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기술탈취를 입증하고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현장에서 조사해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기술침해 관련 소송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서류 정리만 해도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며"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가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집중심리제도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재판 특성상 1심에서 쟁점을 정리하는게 가장 중요하다"며 "전문가가 증거를 수집해 자료를 한꺼번에 제출하면 신속한 재판과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여야에서 발의된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관련 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올해 본격적인 법안 심사가 시작되고 관련 법 발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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