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 사실을 인지한 직후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를 요청한 정황을 확인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최근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 장관의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임 비서관으로부터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이 포함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식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며 불쾌감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다 처벌하는 게 말이 되냐”고 질책했고, 이 전 장관은 해병대에 사건 이첩 보류와 국회·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했다. 그러나 박정훈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 수사단은 이를 수사 외압으로 판단하고 8월 2일 경찰에 사건을 그대로 이첩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은 같은 날 오전 해병대로부터 이첩 사실을 보고받고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겼다. 대통령실에 보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실장은 이를 곧바로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윤 전 대통령은 크게 격노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윤 전 대통령은 같은 날 이 전 장관, 임기훈 전 비서관,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 등과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직접 사건 회수나 박 대령에 대한 표적 수사를 지시했는지 여부를 확인 중이며, 오는 8일 조 전 실장을 재소환해 관련 내용을 조사할 예정이다.
특검은 또 이종섭 전 장관의 이른바 ‘도피성 출국’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날 오전부터 과천 법무부 청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전날 외교부·법무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은 이틀 연속 강제 수사다.
특검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노공·심우정 전 차관, 박행열 전 인사정보관리단장, 이재유 전 출입국본부장 등의 휴대전화와 차량을 전날 압수한 데 이어 이날은 장관실, 차관실 등 사무공간과 인사정보관리단 보관 자료를 확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순직해병특검법은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출국·사임 과정에서의 불법행위, 대통령실과 외교부·법무부·공수처 등의 은폐·무마 의혹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3월 4일 호주대사로 전격 임명됐고, 당시 공수처 수사 중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 상태였지만, 임명 사흘 뒤 공수처 조사를 마친 직후 법무부가 출금 조치를 해제했다. 공수처는 이를 반대했으나 조치는 그대로 강행됐다. 이후 이 전 장관은 출국해 부임했으나 여론 악화로 11일 만에 귀국했고, 같은 달 25일 사임했다.
특검은 대사 임명 절차의 적법성, 외교관 여권 발급 경위, 출금 해제 배경, 귀국 명분이었던 방산 공관장회의의 실체 등을 수사하고 있다. 전날에는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과 장호진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다만 외교부 본청 사무실은 수색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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