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일본에 이어 EU에 대해서도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 주요 품목에 대해서도 당초 예상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키로 했다. 또한 철강·알루미늄·구리 등 주요 금속에 대해서는 일정 수입 물량에 무관세 혹은 저율 관세를 적용하는 할당제도(쿼터제)를 실행키로 했다. 따라서 아직 미국과 관세율 등 교역 조건을 확정하지 못한 한국 관련 업계의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과 EU 간 무역 협정 세부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EU에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의약품 및 반도체에 대해 15%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이 상호관세와는 별도로 부과하는 품목 관세를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향후 시행할 예정인 전략 품목들이다. 일례로 자동차는 기존 관세 2.5%에 품목 관세 25%를 더해 27.5%가 적용되고 있고, 의약품 및 반도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품목 관세를 예고한 품목이다. 따라서 유럽산 자동차, 반도체 및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주 일본과 체결한 무역 협정에서도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종전 27.5%(기존 관세 2.5% 포함)에서 15%로 낮추기로 했고,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는 향후 각각 협상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 발표 내용에는 이들 품목과 관련해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일본을 다른 국가보다 불리하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명기됐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찡 응우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아직 (미국과)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한국 업체들보다 좋은 관세를 받게 되면서 협정 체결을 위한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면서 한국 당국자들이 스코틀랜드까지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며 “이것은 한국이 협상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과 EU는 철강·알루미늄, 구리 등 주요 금속을 비롯해 특정 분야에 대해 쿼터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의는 철강, 알루미늄, 구리와 그 파생 제품에서 공동 행동의 명확한 전망을 제시한다”며 "우리는 이를 '금속 동맹'이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철강, 알루미늄에 50% 품목 관세를 시행하고 있고, 내달 1일부터는 구리에도 50% 관세를 예고한 상태이다. 따라서 주요 금속에 대한 쿼터제가 실시되면 유럽 철강업체들은 수혜가 예상되는 반면 한국 철강업체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이 EU와 이 같은 무역 협정을 체결한 것이 미·중 무역 협상에 앞서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중국이 강점을 가진 금속 분야 약점을 상쇄시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추이훙젠 베이징외국어대학 교수는 "미국은 EU와 협정을 체결하면서 중국을 상대할 때 더 큰 협상 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미·중 양국은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차 고위급 무역협상을 개시했다. 협상의 주요 쟁점 사안은 내달 12일 종료되는 관세 유예 기간을 석 달 연기하는 것과 함께 중국발 과잉생산, 중국의 펜타닐 수출, 미국 기술통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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