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신속한 주택 공급을 위해 도심 정비사업 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정작 일선 사업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인센티브 확대와 사업기간 단축 추진에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등 핵심규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로 이주비 부담마저 심화되면서 서울 등 핵심 도심지의 주택 공급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16일 금융감독원 주재로 진행된 ‘6·27 가계대출 점검회의’에서 정비사업 시 중도금이나 이주비는 대출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이달 초 열린 금융위원회의 ‘부동산PF 상황 점검회의’에서도 현행 이주비 대출 제한 규제를 개선해 달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건설업계가 금융당국을 향해 이주비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데는 건설사들의 자금 부담이 심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서다. 6·27 대책으로 기존 주택가격의 70~80% 수준에서 진행된 이주비 대출이 6억원 한도로 제한되면서 철거 및 이주를 앞둔 사업장을 중심으로 건설사의 추가 이주비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기존 수준의 이주비 지원을 위해서는 결국 신용보강을 통해 자금을 추가 조달해야 해 건설사의 재정건전성과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건설업계에 대한 의견 청취를 통해 제도 개선 검토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채무 부담 완화 대상은 자금난이 큰 중견 건설사들 사업장에 국한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규제의 직격타를 맞은 서울 내 정비사업장은 여전히 이주비와 관련한 자금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비업계에서는 사업시행계획인가 후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주 지연 발생으로 인한 공사 연기와 공급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재건축과 재개발(주택정비형) 조합 중 사업시행인가를 얻고 관리처분인가를 기다리는 서울 내 정비사업 조합은 이날 기준 총 55곳에 달한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기존에도 이주비 같은 경우는 다수 건설사가 70%는 은행 대출을 쓰고도 해결이 어려워 30%는 신용보강을 통한 추가 사업비 대출을 사용하는 상황”이라며 “이주비 대출이 더 줄게 되면 자금 상황에서 여력이 있는 소수 건설사를 제외하고 재정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밝혔다.

재초환 역시 부과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재건축 단지들의 부담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용적률 상향을 통한 도심 공급에 속도를 낸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재초환 존치 입장을 사실상 유지하면서 일선 사업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5일 주택공급 정책과 관련해 “공공의 이익과 민간 이익을 균형 있게 해야 한다. 공공 이익을 잘 살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토부가 재초환 부담금에 대한 재산정을 진행하면서 서울 송파구 등 일부 지자체도 준공 기한에 맞춰 부담금 부과 관련 업무 절차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담금 재산정 및 부과 절차를 앞둔 단지는 전국 51개 단지, 1만8000가구 정도다.
재초환은 조합원 1인당 평균 초과이익이 8000만원을 넘으면 초과분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제도다. 현재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재초환이 유지될 경우,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 효과 역시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과도한 공공이익을 요구하면 정비사업 추진이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업의 걸림돌인 재초환을 걷어내 공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이주비 대출 규제 역시 정비사업에서 차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반영해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