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동 없는 고요한 천지>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에서 떨어져 흘러내린 흙더미 위에 녹색과 붉은 물감을 쏟아 놓은 것 같은 가파른 절벽에 둘러싸인 백두산 천지는 푸른색과 남색을 섞어놓은 듯하고 호숫물은 작은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거대하고 고요한 호수였다. 절벽 아래 물엔 봉우리와 절벽 무늬의 반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6월말 방문한 천지는 대부분 돌산으로 이루어져 많지 않은 평지엔 다양한 밝기의 녹색 이끼류와 흰색의 야생화가 막 자라나고 있었다. 구석구석 쌓여있는 눈과 얼음, 구름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절벽을 따라 구르다 멈춘 다양한 크기의 검 회색빛 바위와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엔 빠른 바람에 부수어지고 합쳐지길 반복하는 희거나 회색빛 구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뜨문뜨문 보였다.



백두산 천지로 가려면 천지행 버스승차장에서 48인승 관광버스로 약 1시간 이동한 뒤, 2차 대기 장소에서 9인승 봉고차로 갈아타고 오르막을 약 40분을 달려 천지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 계단을 걸어 약 15분 정도 올라가면 비로소 천지를 볼 수 있다.
주차장에서 본 천지로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은 순례자 행렬처럼 신비롭고 장엄하다. 주변에 비교할 것이 없어 크기가 체감되지 않는 언덕의 길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 그제야 주변 산의 규모를 알게 된다. 백두산 천지는 가히 '절경'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먼 거리에 있음에도 눈에 가득 담기는 잔잔해 보이는 호수와 거대한 산들로 둘러싸인 모습, 뒤를 돌았을 때 보이는 기암괴석의 산맥들은 어느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황홀한 경험을 제공한다.


<천지, 보는것도 사진 찍는 것도 어렵다.>


천지에 올라온 모든 사람은 한 손엔 휴대전화를 들고 몇 걸음마다 사진을 찍었다. 성인 세 명이 빡빡하게 설 정도의 넓지 않은 계단 길로 이어진 천지 길은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로 인해 혼잡 그 자체였다. 다들 가방을 메어 부피가 늘어났음에도 세 줄, 네 줄씩인 가운데 먼저 가려고 다른 사람의 어깨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으며 들어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안전장치인 계단 옆의 흰 로프는 잡고 올라가기엔 헐거웠고 양옆의 절벽은 잘못 밀려난다면 위험했다.


천지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엔 추락 방지용 나무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사람들은 무질서하게 울타리 앞에 서거나 울타리를 밟고 올라가 천지의 사진을 찍고 구경했다. 뒷사람들은 기약 없이 앞사람이 나올 때까지 줄을 서거나 새치기를 하는 등 발 디딜 틈 없는 상황 속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구나 같은 입장이지만 특히 사진기자인 나의 목적은 천지 전경을 넓고 온전히 아름답게 찍는 것이었다. 하지만 복잡하고 혼잡한 인파 속에서 한정된 시간 안에 좋은 사진을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가장 사람이 적은 위치를 고르고 기다리던 중 앞에서 천지를 보고 있던 사람이 자리를 비켜주어 비교적 빠르게 촬영할 수 있었다. 울타리 틈으로 양발을 집어넣어 최대한 밀착한 후 까치발을 들고 손을 번쩍 들어 천지를 촬영했다. 그렇게 찍지 않는다면 주변의 관광객들이 사진에 어김없이 찍힐뿐더러 카메라 앞으로 불쑥 들어오는 사람도 방지할 수 있었다. 또 절벽이 가리는 천지를 조금이라도 더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천지에서 찍는 기념사진에 본인만 찍히기를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북파와 서파만 방문했지만, 중국에서 천지를 오르는 길은 북파와 서파, 남파 세 길이 있다. 남파의 경우 겨울엔 개방하지 않고 여름에 약 3~4개월만 개방할 뿐더러 하루 입장 인원을 크게 제한해 방문하기 어렵다.
북파는 주차장에서 천지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15분 정도로 매우 짧다. 풍경은 황량한 화성을 걷는 느낌이 든다. 북파 천지에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기암괴석들이 끝없이 층층이 펼쳐져 비현실적이며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서파는 주차장에서 걸어 오르는 데 약 1시간이 걸리고 계단의 층고도 비교적 높다. 풀과 야생화들이 많이 자라 푸르른 고원을 걷는 느낌이 든다. 서파 천지에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하늘과 이어진 끝없는 고원이 펼쳐진다.

<천지 물이 만든 장백폭포>
북파에서 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 이동한 뒤 길을 따라 약 30분 걸어가면 장백폭포를 만날 수 있다. 천지의 물은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을 통해 흘러 내려간다. 이 물은 흐르다가 68m의 장백폭포에서 수직으로 떨어진다. 깎아지른 듯한 돌산들 사이로 움푹 팬 곳에 흐르다 쏟아지는 폭포는 멀리서 바라봄에도 웅장하고 경외감이 느껴지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백두산 정상에 있는 천지는 북한과 중국에 걸쳐 있는 화산호로 수면은 해발 2,267m, 면적은 9.165 km², 둘레 14.4km, 평균 깊이 213.43m, 최대수심 384m, 수량은 19억 5,500만 m³으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가장 깊은 호수이다. 천지처럼 산의 정상에 호수가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천지는 백두산의 분화구에 61%의 지하수와 빙하가 녹은 물, 약 30%의 비와 눈이 녹은 물, 주변에서 흘러들어온 9%의 물이 고여서 생긴 호수다. 폭포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더라도 계속해서 채워져 호수를 마르지 않게 유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천지를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지는 일 년 중 100일 정도만 볼 수 있다. 265일 이상이 안개가 끼고 눈과 비가 많이내려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마저도 하루종일 맑은 날씨가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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