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의 티키타카] (1) 한국은 '칼 세이건'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한국에 천재들이 태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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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시사평론가]



80년대 말~90년대 초, 인터넷도 없던 시절 한 블랙유머가 ‘주간조선’이라는 잡지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1998년 PC통신의 확산과 함께 크게 퍼진 이 유머의 제목은 바로 ‘천재들이 한국에 태어난다면?’이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김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수학에는 뛰어났지만, 영어와 내신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 재수, 삼수를 거듭하다가 결국 생계를 위해 잡일을 하며 살아간다. 정에디슨은 혁신적인 발명을 쏟아냈지만 특허청에서는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등록을 거부했고, 일본 사람들에게 발명 도안이 넘어가 세계 특허를 내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열 받은 정에디슨은 고시원에 틀어박혀 “먹고 살려면 법을 공부해야 한다”고 고시생이 되었다. 이퀴리부인은 봉제공장에서 곰돌이 눈알 붙이기 일을 하고, 박갈릴레오는 북쪽에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틀렸다”고 말했다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

오늘은 칼 세이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코스모스>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에 ‘천문학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여러 업적 중 하나는 NASA의 다양한 우주탐사선 프로젝트(여기엔 보이저 1, 2호가 포함된다)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인데, 오늘 얘기의 중심이 되는 바로 ‘창백한 푸른 점’을 탄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의 이 지구 사진은 인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주 사진 중 하나가 됐다. 칼 세이건은 1996년 겨울, 폐렴으로 6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로 남은 ‘창백한 푸른 점’ 내레이션을 우리는 여전히 들을 수 있다. 꼭 한 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KnsdKWNpQ

여기가 바로 우리의 보금자리이자, 우리 자신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알고, 우리가 들어봤던,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살아왔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경제 체제, 모든 사냥꾼과 농부,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사랑에 빠진 연인,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정치인, 슈퍼스타와 지도자 그리고 역사의 모든 성인과 죄인까지, 모두가 태양빛 속에 떠다니는 이 작은 점 위에서 살아갔다. 지구란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

그 작은 점의 일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왕과 황제들을 떠올려보자. 거의 구분되지도 않는 다른 영역의 이들에게, 어떤 이유로 끊임없이 잔혹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갈등을 일으키고, 때로는 서로를 증오하거나 죽이고 싶어 한다. 이 모든 우리의 만용과 자만, 그리고 스스로가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을 이 ‘창백하게 빛나는 점’이 조용히 반박하고 있다.  

지구는 어둠으로 가득 찬 우주 속에 떠 있는 외로운 알갱이일 뿐이며, 이 광대함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존재는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이주할 수 있는 곳도 없다. 다른 행성을 방문할 수는 있지만, 정착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지금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 지구다.

천문학을 배우면 인간이 겸손해지고 인격이 깊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멀리서 찍힌 이 사진만큼 인간의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일깨워주는 것도 드물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좀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 이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중에서

영상 속 진행자가 “카메라를 지구로 돌리게 했습니다.”라고 담담히 설명하지만, 실제로 그 작업은 영하 200도 이하의 극한 환경에서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이루어진 일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인내하며 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이런 도전이 가능할까?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미국 NASA는 1977년, 매리너 계획의 일환으로 보이저 1호와 2호를 발사했다. 보이저 1호는 목성과 토성을 탐사한 뒤, 태양계 끝까지 나아가는 임무를 맡았다. 칼 세이건은 1980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의 138배(138AU) 지점에 도달하자, 계획에 없던 제안을 했다. “카메라를 돌려 우주에서 지구를 한번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먼지보다도 작아, 화면에서 1픽셀도 채 안 되는 작은 점이었다. 인류는 한때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고, 우리가 우주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엄청난 우주 속에서 본 지구는 1픽셀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었다. 칼 세이건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과학적 이유보다는 인류가 우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깨닫게 해 주려는 의도로 이 제안을 했다.

하지만 NASA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상 작동하던 보이저 1호를 계획에 없이 조작하다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카메라가 태양을 바라보게 되면 그 빛에 의해 렌즈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 NASA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칼 세이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9년 뒤, 1989년에 다시 제안했다. 그 무렵 보이저 1호는 해왕성을 지나 원거리 항해 임무를 막 마쳤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카메라는 꺼지려던 상황이었다. 여전히 전문가들은 카메라 손상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NASA 국장이 바뀌었다.  우주 비행사 출신 리처드 트룰리가 새 국장이었고, 그는 칼 세이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가 바로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근처, 지구에서 60억 km나 떨어졌던 때였다.  1990년 2월 14일 오전 4시 48분(세계표준시, 한국시각 오후 1시 48분), 인류는 우주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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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NASA는 촬영 전날, 카메라를 3시간이나 예열해야 했다. 지구는 실제로 0.12픽셀에 불과할 만큼 작았다. 촬영 성공도 장담 못 했으나, 우연히 산란된 태양광 속에 지구가 들어와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시 주제에 돌아오자. 앞서 언급한 김아인슈타인, 정에디슨, 최퀴리부인, 박갈릴레오가 대한민국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회문화 시스템이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대한민국에 칼 세이건 같은 인물이 100명 태어난다 해도, 창백한 푸른 점 같은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추진하는 공무원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험 부담이 크고, 공식적으로 한 번 거절당한 프로젝트를 또 들고온다면? 한국 공무원 사회에서 정말 가능할까? 아마 바로 해직당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칼 세이건은 세 번의 결혼과 이혼, 불륜 논란까지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전처가 인사청문회에 나오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그 현실이라면 뼈도 못 추리지 않았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아무리 명백한 위험이 있다 해도 인류에게 ‘철학적 사색’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믿고 “내가 책임지겠다”며 밀어붙일 수 있는 리더십이다. 당시 NASA 국장 리처드 트룰리처럼 말이다.  우리 공무원 조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있더라도, 학연·지연·혈연에 얽힌 비합리적 현실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솔직히, 필자는 회의적이다.

지난 6월 4일,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첫 ‘비상경제점검 TF’ 회의를 주재하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시간 구애받지 말고 연락달라”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주요 부처 실무 책임자들에게 건넸다고 한다. 이 신선한 시도가, 복지부동이 만연한 공무원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은 분명 민주공화국이지만 여전히 봉건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은 현실, 그리고 이 안에서 진정한 소신과 책임감을 지닌 칼 세이건과 리처드 트룰리가 나오기를, 이 모순이 바뀌길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KBS 뉴스애널리스트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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