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BOKonomics] 한국은행이 이재명 "65세 정년연장" 정면반박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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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대선 레이스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65세 정년연장' 공약에 대해 정면반박하고 나섰다. 한은은 지역별 대입 비례선발제, 농산물 수입 확대, 돌봄 인력 최저임금 적용 예외 등 그동안 논쟁적인 사회 이슈를 다루는 보고서를 발표해왔는데 이번엔 대선 정국 한복판에서 민감한 노인 복지 공약에 불을 붙인 것이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사이의 단절은 생계의 절벽"이라며 국민연금 수급 시점(현재 63세, 2033년 65세)에 맞춰 법정 정년(현재 60세)을 단계적으로 65세로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유권자 넷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만큼 이들을 겨냥한 복지 공약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유력 대선 주자가 내세운 '65세 정년연장' 공약이 실현될 시 나타날 부작용을 경고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일률적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해선 취약계층과 청년의 고용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년층의 고용안정성과 빈곤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동시에 젊은층의 재정 부담도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만큼 정년퇴직 후 재고용하거나, 연공서열을 벗어난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된 후에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KDI-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 초고령사회의 빈곤과 노동 정책 방향을 묻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KDI-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 '초고령사회의 빈곤과 노동: 정책 방향을 묻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5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 주최한 '초고령사회의 빈곤과 노동: 정책 방향을 묻다' 정책 심포지엄에서 법정 정년연장과 관련해 "(향후) 노인층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정치권이) 임금 체계 등 제도를 잘못 디자인할 경우 부작용이 많을 수 있다"며 "그런 경우 거시적으로 훨씬 더 많은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총재는 "정책을 이야기할 때 인기를 생각해 추상적인 메시지만 던지면 안 된다"며 "진짜 어려운 것은 제도의 정교한 설계"라고 정치권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결국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정치권이며 우리가 하는 분석을 바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한 제도 설계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과 KDI는 제도의 정교한 설계를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발표했다.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강화해 고령층의 자영업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퇴직 이후에도 일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으며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수익성이 낮고 경쟁이 치열한 자영업에 굳이 나설 이유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은퇴하면서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 수는 2015년 142만명에서 2024년 210만명까지 급증했고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고령층의 비중은 지난해 37.1%까지 커졌다.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964만명이 본격적으로 은퇴하면 2032년에는 248만명(비중 9%)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준비 없이 뛰어든 60대 신규 자영업자의 35%는 연간 영업이익이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에 진입해 과도한 경쟁에 노출된 데다가 준비 부족과 낮은 생산성에 시달리며 결국은 노인빈곤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그럼에도 퇴직 후 자영업을 택하는 이유와 관련해 한은은 임금 근로보다 '계속 근로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적정 수준의 급여만 유지된다면 자영업 대신 안정적인 상용직 일자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임금 체계 개편과 함께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상용직 근로자가 60세 이후 기존 소득 수준을 적절히 조정해 계속 근로할 수 있다면 소득이 이전보다 낮아지더라도 임금 일자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컸다. 60~64세에는 정년 전 소득의 60%, 65~69세에는 40% 정도를 받으면 자영업 소득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한은은 이외에도 안정적 임금 일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환경을 갖출 수 있는 방안으로 서비스업에서 임금 근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서비스업 대형화', 고령 은퇴자와 일손이 부족한 지방 중소기업을 연결해주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노년층이 가진 자산의 연금화도 한 가지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이 총재는 "고령 노동자의 자영업 유입을 줄이기 위해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임금 체계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휴버트 험프리 전 미국 부통령의 '정부의 도덕성은 인생의 새벽에 있는 아이들, 황혼에 있는 노인들, 그리고 그림자 속의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로 판단된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노후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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