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투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하반기 투자 증가율이 크게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질적인 내수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선 우리 성장의 토대가 되는 투자 부문이 살아나야 하는데 위기 신호가 짙어진 것이다. 점차 뚜렷해지는 투자 둔화 흐름을 고려하면 내년 경제성장률 역시 잠재 수준을 크게 밑도는 것은 물론 장기 '제로 성장'이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제시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월 말 평균 1.8%에서 4월 말 평균 1.6%로 0.2%포인트 낮아졌다. 버클리(1.8→1.4%), BOA(2.0→1.3%), 씨티(1.6→1.3%), HSBC(1.9→1.4%) 등 절반이 넘는 IB들이 전망치를 낮췄다.
이는 한국은행의 지난 2월 전망치(1.8%)를 밑도는 수치다. 한은도 오는 29일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출 예정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성장률 전망을 내려야 할 상황"이라며 "정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투자가 얼마나 떨어졌는지가 관심사"라고 했다.
문제는 내수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투자 지표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경제계는 올해 하반기 투자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에 따르면 2024년 12월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10년 전보다 3.4배 늘어난 365.14였다. 지수는 64개월 만에 최대치다.
설비투자가 줄었다는 것은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는 것으로 경기침체 전조현상으로 해석된다. 올 1분기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관세 전쟁을 본격화한 시기이자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짙어진 때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미래 수요 증가를 예상하면 설비투자를 늘리고, 반대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를 줄인다.
투자가 살아나면 수출도 생산도 고용도 순풍을 탈 수 있지만 반대로 투자가 급감하면 당장의 성장률이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몇 년간에 걸쳐 잠재성장률도 함께 떨어진다. 올해와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한참 밑도는 0%대로 주저앉는 데 이어 장기 저성장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SGI는 기업 투자 유도를 위해 "안정적인 투자 환경 조성과 불확실성 완화를 위해 정부가 일관된 경제정책으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경제정책 변경 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 예고하는 등 기업과 소통을 강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잘못된 규제를 혁파하고 경영여건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투자은행 육성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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