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떤 이가 보기엔 열병 수준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가 보기엔 중병일 수도 있다. 학교 측이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하자 지난 8일 총학생회가 반발하며 교내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학생들은 ‘공학 전환 결사 반대’ ‘민주동덕은 죽었다’를 외치며 수업 거부와 기물 파손으로 물리적 행동에 나서면서 과격화 양상을 보였다. 이후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봉쇄한 채 학교 측과 대치했고, 지난 21일 양측은 면담 끝에 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반발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백주년기념관 등 대부분 건물에 대한 점거는 해제했지만 본관에 대한 점거와 수업 거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완전한 공학 논의 중단, 학생 의견 수렴 절차 반영 등 요구사항을 들여다보자면 아직 둘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 보인다.
여대들의 공학 전환 추진은 이전부터 있었다. 미국의 ‘세븐 시스터스’가 그렇듯이, 국내 여대들도 여권 신장이 일정 수준 이뤄지자 여성 교육 기회 제공 이상의 역할을 주문받기 시작했다.
1978년 수도여대(세종대)가 공학으로 바뀐 이후 1990년대 들어 성심여대(가톨릭대),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상명여대(상명대), 부산여대(신라대)가 공학으로 전환됐다. 현재 서울 지역 4년제 여대로 이화, 숙명, 성신, 서울, 덕성, 동덕 6곳만 남았다.
여대의 가장 큰 적은 학령인구 감소다. 한 해 신생아 수는 20만명 남짓, 올해 수능 응시 인원은 50만명을 갓 넘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학 재정 악화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학교 본부로서는 미래 생존을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여대들은 여성 인재 양성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AI 혁명이 나라를 뒤흔들고, 이공계 인재 육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남녀공학 대학의 이공계 비중이 40%를 웃도는 반면 주요 여대들은 30%를 밑돈다. 특히 동덕여대는 20%도 넘기지 못하며 최하위권에 자리 잡았다.
앞서 덕성여대와 성신여대 등도 공학 전환 논의가 있었지만 현재는 백지화된 상태다. 두 학교 모두 학교 측에서 먼저 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교내 의견 수렴 과정에서 명확한 반대 의사를 확인하자 이후 자연스럽게 논의가 힘을 잃었다.
만약 동덕여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과격한 폭력성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시위 학생들은 래커를 사용해 교내 건물과 각종 기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안겼다. 특수청소업체들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특수용액을 사용해도 원상복구가 힘들어 다시 짓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훼손 정도만 볼 때 올 초 경복궁 훼손 사건과 비견될 정도로 전체 피해 금액만 최대 54억원으로 추산된다.
동상 훼손도 아쉬운 지점이다. 시위 학생들은 학교 앞에 있는 흉상을 설립자인 조동식 선생으로 착각해 ‘친일파를 처단하라’ 등 문구를 부착하며 계란, 떡볶이, 밀가루 등 오물을 투척했다. 하지만 이 흉상 주인공은 전 동덕여대 이사장인 조용각 박사다.
조 박사는 동덕여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는 등 교세 확장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재단 소속 여자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평생을 여성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82년 교육공로포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의 동덕여대 여성 교육을 위해 가장 공헌한 인물이 가장 수난을 겪는 아이러니다.
대부분 여대들이 외국 선교사나 왕실에 의해 세워졌을 때 순수 민간의 힘으로 세워졌다는 점은 동덕여대의 큰 자부심이다. 동덕여대의 교훈은 도의적 인격과 학식을 갖추고 사회와 화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에서 도의, 진리, 화협(和協)이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협의함’이란 의미처럼 지금 동덕여대에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닌 화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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