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이유 한 가지를 생각해라"…'기술 중시' 기업인, 조석래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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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제 기자
입력 2024-03-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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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되는 이유 백 가지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생각해라" 재계 대표 '기술 중시' 기업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조 회장은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고인, 공학도 출신…치밀한 분석 후 사업 전개" 조 명예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고인께선 생전에 기술에 대한 집념이 상당하셨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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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에 대한 집념 상당"…도전 정신 강조

  • 신혼여행, 이탈리아 포를리…직원들과 함께 기술연수

  • 허례허식·의전 싫어했던 고인…부하직원 의견도 귀 기울여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재계 대표 '기술 중시' 기업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고인께선 생전에 기술에 대한 집념이 상당하셨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효성그룹]
"안되는 이유 백 가지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생각해라"

재계 대표 '기술 중시' 기업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조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뛰던 당시, 우리나라는 내·외부 여건이 좋지 않아 조 명예회장에게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 회장은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고인, 공학도 출신…치밀한 분석 후 사업 전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1990년 2월 직원들과 함께 HICO 창원공장을 순시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1990년 2월 직원들과 함께 HICO 창원공장을 순시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조 명예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고인께선 생전에 기술에 대한 집념이 상당하셨다"고 입을 모은다. 고인이 회장 직에 오른 1980년대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기술적 기반도 미약해 여건이 여러모로 부족했다. 특히 경쟁사들도 늘어나는 시기여서 내부에선 신사업에 대한 도전을 만류하기 일수였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이같은 주위의 만류에도 도전 정신을 강조하며 '안되는 이유 백 가지' 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정도의 어려움은 도전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폴리프로필렌 사업'이다. 당시엔 선발 업체들이 폴리프로필렌의 원료인 나프타를 선점한 상황이라 일본에서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인은 수소문 끝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프로필렌을 만드는 탈수소공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개발 중인 신공법인데다 이를 상업화할 기술이 없었으나 고인의 용단으로 탈수소공법을 적용해 시작한 폴리프로필렌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은 "공학도 출신의 고인은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술을 이해한 뒤 확신이 들면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회상했다.
신혼여행서도 이어진 '기술 사랑'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 참여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조석래(오른쪽)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 참여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고인의 '기술 사랑'은 신혼여행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조 명예회장은 결혼식 이후 신혼여행을 이탈리아 포를리로 갔는데, 이 지역은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수를 받고 있던 장소였다. 

고인은 직원들과 기술연수를 함께 받기 위해 신혼여행을 포를리로 갈 정도로 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은 "고인께선 기술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대단히 강했다"며 "영위하고 있는 사업 분야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 공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공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전문성이 높았다. 과거엔 이른바 '부잣집 아들'이 공학을 배우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 명예회장의 기술 사랑은 젊을 적부터 그 조짐이 보인 셈이다.
허례허식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006년 5월 당시 일본 고이즈미 총리를 예방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조석래(왼쪽)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006년 5월 당시 일본 고이즈미 총리를 예방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조 명예회장은 무슨 일이든 직접 나서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닐 정도로 허례와 허식을 싫어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는 홍콩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정 전 전무가 내려가보니 그 곳엔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고 한다. 정 전 전무는 이때를 두고 "깜짝 놀랐지만 정말 소탈한 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회상했다.

허례허식을 싫어한 사례는 또 있다. 과거 일본 출장 자리에선 자동차보다 전철을 이용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비싸고 멋들어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폼 잡는 것보다는 시간 약속에 맞춰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전철을 더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실무진과 토론도 많이 했고, 임원들도 생각이 다르면 조 명예회장에게 "그건 틀린 것 같다"며 건의하기도 했다.

고인은 아무리 부하 직원이라도 전문 지식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였다. 반대로 잘못이나 약점을 감추려는 사람은 질타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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