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100투더퓨처] 이제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이 아닌 순로장생(順老長生)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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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4-04-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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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전래적으로 인류는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염원해 왔다. 수천 년 동안 늙음을 억제하고 방지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연단술·연금술과 같은 비술을 부단하게 개발하여 왔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고, 불로장생의 염원은 무모하고 허황한 사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제도의 개혁은 인간 수명을 급격히 늘려 사회의 고령화를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노화를 억제하고 거부하자는 안티에이징(Anti-Aging·抗老化)은 노화를 근원적으로 적대시하는 개념으로 노화 해법의 전통적인 주도적 방안이었다. 근자에는 노화 현상이 생리적 변화가 아닌 질병 상태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노화를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노인들이 환자로 바뀌게 되고 노화는 피해야 하고 버려야 하는 상태임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한층 더 나아가서 늙음을 젊음으로 되돌리자는 역노화(逆老化·Reverse Aging) 개념이 공공연하게 추가되면서 노화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측면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 당장 의료기술의 발달을 통하여 수명 연장이 눈앞에서 달성될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나면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수명 연장 방안의 개발은 현실적으로 요원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사회적 혼선이 가속되고 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당사자인 노인들을 폄하하고 좌절하게 하여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훼손하고 닥쳐오는 초고령사회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생명체의 생리적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일어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다가 어떤 시점부터는 더 이상 자라는 대신 늙어 가며 결국은 죽는 생로병사의 과정이 생명의 생리적인 노정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늙음을 굳이 거부하거나 반대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대응하는 방법이 더욱 윤리적이고 실효적일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의 연구 성과를 통하여 노화의 생물학적 의의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고 생명체가 외부 스트레스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을 위한 생명의 과정으로 밝혀지면서 노화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음이 지적되었다. 또한 평균연령이 30세밖에 되지 못했던 시대에도 100세에 이르는 초장수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노화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획일적 효과를 미치는 게 아니라 개인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연령적 노화와 상관없이 개별적 차이에 따른 건강 장수가 가능함을 분명하게 하였다. 

따라서 노화를 거부하는 안티에이징 개념을 벗어나 대안으로 노화를 수용하여 긍정적으로 대응하자는 웰에이징(Well Aging·順老化)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참살이라는 웰빙(Well Being)과 삶의 종점에서 사람다운 존엄성을 지키며 참죽음에 이르는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논의와 실천적 행동이 크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고종명(考終命)을 오복 중 하나로 포함하여 웰다잉의 의미를 존중해 왔다. 

그러나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웰빙에서 웰다잉에 이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늙음이 점차 삶의 복합적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종래의 항노화(안티에이징)라는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역발상으로 노화에 대한 능동적이고 긍정적 대응을 추구하는 순노화(웰에이징)라는 개념이 새롭게 제기되었다(<웰에이징> 박상철, 2009 생각의나무). 항노화는 노화를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보고 노화 억제만을 지상 목표로 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인이 무기력한 존재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반면 순노화는 나이듦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부각하면서 살아온 과정에 축적해온 지혜와 경험의 미래지향적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순노화는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하게 자기 삶을 이끌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질을 높게 영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백세인들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면 답은 거의 똑같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다' '하느님이 데려가면 좋겠는데 안 데려가시네' 이런 식이다. 반면 구미의 백세인들은 자신이 나이든 걸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우리나라 백세인은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퇴직하고 놀게 되니 나이 든 것이 죄 짓는 것이며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반면 구미의 백세인이 당당한 이유는 다른 사람이나 젊은 세대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자신의 독립과 존엄성을 생명의 최후 순간까지 지켜 나가는 태도의 차이가 나이듦을 당당하게 한다.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에 맞추어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설계하여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순노화다.

인간의 장수 요인은 집 짓기에 비유하여 바닥과 기둥, 지붕 세 가지 축으로 나뉘어 설명한다. 바닥 조건은 성별, 유전자, 환경, 생태 문화와 같은 자연생태적 요인을 가리키며, 지붕 조건은 의료제도와 사회보장, 경제적 상황과 같은 사회정책적 요인이다. 한편 기둥 조건은 운동, 영양 관계, 사회 참여와 같은 개인이 담당하여야 하는 요인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끝까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면 오래 산다는 것이 불편하거나 미안해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오래 산다는 것이 남에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생명체의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약물을 사용하여 무리하게 노화를 거부하려고 발버둥 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앞서서 노화라는 생리적 변화를 수용하여 오히려 활용하면 노화가 결코 두려운 현상이 될 수 없으며 그 효과가 분명할 것은 자명하다. 노화를 부정하거나 적대시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서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삶을 개선해 나가는 웰에이징을 이루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추구하지 않고 순로장생(順老長生)을 추구하여야 할 때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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