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의사 파업을 정당화하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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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4-03-1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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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총궐기에 약 2만명의 의사들이 모였다 사진연합뉴스
의협 총궐기에 의사 2만여 명이 모였다. [사진=연합뉴스]



 

의사 파업이 끝날 조짐이 없다. 지난달 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날 때만 해도 의사 파업이 길어야 1~2주 만에 끝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손을 들든, 의사들이 정부에 손을 들든 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파업이 벌써 4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젠 빅5 병원 의사들까지 파업에 동참하려 한다.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오는 18일까지 정부가 의대 증원 방침을 바꾸지 않으면 집단 사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른 빅5 병원 의사들도 연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사 파업 사태를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의사 파업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화물연대 등 일반 노조 파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른 노조 파업은 물류나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이다. 의사 파업은 사람 생명을 담보로 한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면 환자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아무리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의문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파업에 당혹감
 

정부는 203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53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 등 3개 기관은 연구 보고서에서 2035년 의사 수가 1만명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여기에 의료 취약 지역에 필요한 의사 5000명을 더해 총 1만5000명 부족으로 결론 내렸다고 설명한다. 5년간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늘리고 5년 뒤에 의대 정원을 재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를 인용해 2021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2.6명(한의사 포함)이라고 밝혔다. OECD 평균(3.7명)보다 30% 정도 적다. 연간 대학 의학계열(한의학 포함) 학과 졸업자 역시 인구 10만명당 7.3명으로 OECD 30개 회원국 중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며 증원에 반대한다. 의사 수가 부족한지 아닌지는 정밀한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다. 정부 방침대로 5년 동안 매년 2000명을 늘리는 게 적정한지는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다. 정부도 5년 뒤 의대 정원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관련 통계로 보면 한국의 의사 수가 선진국 주요 국가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의사들도 이 현실을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의사들은 정반대다. '증원 백지회'만 주장한다. 의사가 부족하지도 않지만, 의사를 증원한다고 해서 의료계 최대 문제인 필수 의료 인력과 지방 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의사를 증원한다고 필수 의료 인력과 지방 의료 인력 부족이 저절로 해결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의사를 늘리면 그중 일부가 필수 의료 분야나 지방 병원으로 가는 '낙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낙수 효과가 과연 있을지, 있다면 얼마나 클지는 알 수 없다. 


정부 대책 거부하고 '증원 백지화'만 주장
 

그래서 정부는 의사 증원과 별도로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인력 확충 정책도 내놓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에는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 보상을 확대해 주기로 했다.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만들어 의사가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에 들면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도 대폭 완화해 주기로 했다. 의료 사고를 당한 환자는 의사가 가입한 보험에서 손해배상금을 전액 받게 해 의사나 병원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정부가 공개한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초안에 따르면 미용 같은 비필수 진료과 의사는 진료 기록, CCTV 위조 등 고의적 불법 행위가 없는 한 환자가 상해를 입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필수 진료과 의사는 면책 범위가 더 넓어진다. 고의적 불법행위가 없는 한 환자가 가벼운 상해는 물론 중상해를 입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환자가 사망했을 때라도 고의적 불법이 없으면 감형받고, 불가항력일 때는 처벌되지 않는다. 정부는 모든 의사가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필수 진료과 의사의 책임보험비는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완화는 필수 진료과로 꼽히는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사안이다.  

 

정부는 지방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2028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생 60%를 지역 인재로 선발하되 '비수도권 지역에서 중학교를 입학·졸업한 뒤 해당 의대가 있는 지역의 고교를 입학·졸업한 학생'으로 자격 조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방 중·고교 입학·졸업자로 한 이유는 예컨대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가 중간에 지방으로 전학 가서 의대에 입학하고 졸업 뒤에는 서울로 되돌아오는 편법을 막기 위해서다. 중·고교를  지방에서 나왔다면 지방 연고가 그만큼 강해 의대 졸업 후에도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정부의 필수 의료 대책까지 거부하고 있다. 정부 대책이 미흡한 점이 많고, 전공의들을 병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한다. 정부 대책에는 여러 가지 보완할 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은 앞으로 더 논의해서 보완하면 된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자기들이 요구해온 대책까지 거부하며 ‘증원 철회’만을 외친다.

 

의사들은 정부 방침대로 의사를 증원하면 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의대 수업이 부실해진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위험이 있다면 정부에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요구해 고쳐 나가면 된다. 그러지 않고 증원 철회만 주장하니 의료 붕괴와 의대 수업 부실 우려는 증원을 반대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고 속셈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사 늘어 수입 줄까 우려하는 듯
 

의사가 늘어나면 의사 수입은 줄어든다. 지금의 의사는 물론이고 장래의 의사인 의대 학생들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의사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지금의 체제를 선호하고 지키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의사는 일반 직장인 평균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고연봉을 받고 고수입을 올리는 게 당연한가 하는 점이다. 의사들의 고연봉·고수입은 시장경제 논리로만 보면 정당할 수 있다. 의사가 되려면 남보다 더 노력해서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의대에 들어가 10년간 수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머리도 좋고 노력하는 기질도 갖춰야 한다. 의사는 이런 능력과 노력의 산물이다. 능력과 노력으로 이룬 성과에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게 시장경제 원리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로버트 노직(1938~2002)은 시장의 결과는 정당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정당하게 소유한 것을 정당하게 사용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이 능력과 기질을 이용해 모은 재산은 물론이고 타고난 능력과 기질도 그 개인의 소유물이라고 한다. 의사는 자기 개인의 정당한 소유물을 정당하게 이용해서 의사가 됐다. 그러니 능력이 떨어지거나 노력하는 기질이 없어서 의사가 되지 못한 사람들보다 고연봉을 받고 고수입을 올리는 것은 노직 주장대로 한다면 정당하다. 

 

부유한 부모를 둔 덕분에 의사가 된 경우는 어떨까? 가난한 집안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 의사가 되기에 유리한 게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사교육도 받고 등록금이 다른 학과보다 훨씬 비싼 의대에 입학할 수 있다. 부유한 계층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힌다는 ‘계급 천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노직은 이렇게 부유한 부모 덕분에 남들보다 성공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정당하게 번 재산을 자식에게 정당하게 사용한 이상 그 결과는 정당하다고 한다. 정부가 불평등을 바로잡으려고 개입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의사 고연봉·고수입은 당연한가
 

이에 대해 역시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존 롤스(1921~2002년)는 시장의 결과라고 해서 무조건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장의 결과는 타고난 재능과 기질의 결과이다. 어떤 부모를 뒀느냐도 시장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남다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나는 것은 운이다. 부유한 부모를 만나는 것도 전적으로 운이다. 그런데 타고난 운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과 통제 범위 밖에 있다. 


롤스는 우리가 선택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한다. 불운을 타고난 사람에게 그 불운의 결과를 혼자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마찬가지로 행운을 타고난 사람에게 그 행운의 결과를 혼자 독차지하게 하는 것도 부당하다. 롤스는 과정은 외면한 채 결과만 따질 수는 없다고 한다. 불운을 타고나 흙수저가 된 사람은 영원히 흙수저로 살고, 행운을 타고나 금수저가 된 사람은 영원히 금수저로 살아야 한다면 이는 정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 롤스의 주장에 담겨 있다. 

 

롤스는 불운을 타고난 사람에게 정부가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줘 불평을 해소해 줘야 하듯이, 행운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일정한 제한을 가해 재산을 재분배하는 게 정의라고 한다. 롤스 이론대로 의사라고 해서 일반 직장인 평균 수입의 몇 배나 되는 고연봉을 받고 고수입을 올리는 것이 꼭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능력과 노력의 결과 의사가 된 점을 존중해 일반 직장인보다 더 높은 수입을 얻는 것은 인정하되 너무 높은 보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의사 증원은 의료 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잘 작동하도록 하려는 게 근본 취지이다. 하지만 의사가 늘어나면 의사 수입이 줄어드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고연봉·고수입이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 있다. 의대 입학생 수를 2000명씩 늘리면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반도체 등 기술입국에 필요한 분야로 진줄하는 학생들이 적어지면 국가적으로 손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 의사가 늘어나서 ‘의사=안정적 고수입 보장’이라는 현실과 인식이 바뀌면 의대 쏠림 현상은 오히려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원 배분이 정상화될 수 있다. 

 

의사 파업에는 의사 증원에 따른 의사 수입 감소라는 의사들의 불안과 불만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사의 고수입·고연봉이 반드시 정당하지만은 않다면 국민 생명을 담보로 고수입·고연봉을 지키려는 의사 파업도 정당하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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