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독일식 과거청산의 '불편한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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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1-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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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당장 내리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기차에서 강제로 끌어 내릴 거다.” 거구의 독일인 역무원이 자정 출발을 앞둔 객차 안에서 큰 소리로 위협했다. 예매한 승차권을 소지하고 승차하려다가 잠긴 객실 문틈으로 보인 낯익은 업무수첩과 필기도구를 보고 열차 밖에 있는 역무원에게 문의하니 “특별한 상황” 때문에 자신이 “객실에서 일을 봐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나는 어디에 앉아가야 하느냐는 이어지는 질문에는 “통로 바닥에 앉아가든지 내일 가든지 당신이 알아서 해라”는 답변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는 사이에 그는 서둘러 멀어져갔다. 일단 객실로 돌아오니 문은 주변 청년들의 도움으로 열려있었다. 잠시 후 객실로 온 역무원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선반에 올려 있던 짐들을 내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보이는 청소년 5, 6명이 가까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출력한 승차권을 보여주며 “예약석에 앉아 갈 권리”를 주장했지만 “모든 승객의 안전”이라는 의아스러운 이유로 당장 끌어내릴 듯이 연신 위협했다. 지난 11년의 독일 생활이 그 순간에만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기세에 눌려 결국 객실을 나왔다. 대체 교통수단이 없는 자정이기는 했지만 모멸감에 뮌헨에서 빈까지의 야간열차 여행은 악몽이 되고 말았다. 귀국 후 철도소비자상담센터에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는 A4 3매 분량의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후 받아본 답신은 ‘당신이 묘사한 그러한 상황을 경험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인권침해일 것이고 자체조사를 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3주일쯤 지나 자체조사결과에 대해 문의했으나 회신은 없었다.

독일의 우경화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독일에서 극우정당으로 평가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창당한 지 15년 만인 2021년에 10.3%를 득표하여 5대 정당으로 연방의회에 진입했다. 이들은 망명권 강화, 반이슬람과 반유대인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위헌적인 정강요소로 인해 2022년부터 연방행정법원의 판결에 의거하여 연방헌법수호처의 관찰대상이 되고 있다. AfD는 지난해 7월 이후 지지율 조사에서 제1야당 기민당·기사당 연합에 이어 줄곧 2위를 달리면서 정치권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fD는 오는 9월 주의회 선거를 앞둔 튀링겐주에서 30% 넘는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히틀러도 ‘선출된 독재자’였음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독일의 우경화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유대인 학살의 전쟁범죄에 대한 철저한 청산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는 독일에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게 “과거사 청산”은 현대사를 규정하는 열쇠말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세력의 반복적인 득세를 경험하는 배경에는 바로 독일식 과거청산의 대내외적 불균형에 있다. 독일의 대외적 과거청산은 특히 유대인에 관한 한 ‘무결점’이라 할 만하다. ‘유대인 600만명 학살’이라는 사실을 축으로 하여 과거사를 청산하고 있다. 전쟁 기간 동안 학살당한 유대인은 물론 전범기업에서 노동을 착취당한 유대인에 이르기까지 신원만 확인되면 정해진 기준에 따라 무기한 배상하고 있다. 또한 ‘유대인 600만명 학살’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이를 사실로서 부정하는 독일인은 학술공동체에서 배제당할 뿐만 아니라 공직 취임도 금지된다. 독일이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과거청산의 의지와 실행력은 독일에게 커다란 대외자산이다.

독일의 과거청산이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부문은 대내적 과거청산이다. 전후 독일 정치는 “네오나치” 극우세력을 여론을 통해 심판하고 시민사회에서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일단 전쟁 직후에는 냉전과 분단이라는 제약조건 하에서 당시 서독이 “경제 재건”을 명분으로 나치 추종세력까지 사면해서 정치참여도 허용했다. 나치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이념과는 결별하지만 이들 이념을 실행하는 데 전면에 섰던 자일지라도 기능적으로 필요한 인력은 전후 복구를 위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로 인해 서독은 이념적으로는 반(反)나치를 표방하면서도 나치세력을 온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AfD 이전부터 독일국민당(NPD)이 있었다. NPD는 메클레부르크-포포먼주에서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작센주에서는 2014년까지 주의회에 진출했었다. 지지층은 저학력 남성, 저소득 노동자 및 실업자들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불완전한 대내적 과거청산은 유대인에 관한 ‘무결점’의 과거청산에 두 가지 ‘결함’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의 과거청산 거부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행위에 대한 침묵이다. 독일식 과거청산의 그늘은 다른 2차대전 전범국인 일본의 과거청산 거부는 물론 일체의 역사왜곡에 대해 비판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데 있다. ‘바둑은 5000년 된 일본의 게임’이라는 포스터가 기원에 걸려 있는 것을 역사왜곡으로 지적하면, 바둑을 독일에 처음 소개한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반일 한국인’으로 의심하는 것이 독일 바둑 동호인의 감각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경험한 진보 인사가 농담처럼 ‘독도 폭파’를 소위 ‘해결책’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경악스럽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소녀상을 일본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자 카셀 대학 당국이 기습 철거했다. 이처럼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방관자를 넘어선 방어자의 자세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과거 만행을 용인함으로써 결국 ‘철저한 과거청산의 목표는 미래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있다’는 독일식 과거청산의 원칙을 일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에게 이스라엘은 아킬레스건이다. 독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반유대주의로 비난받기 십상이다. 독일의 슈미트 전 총리는 이스라엘의 심기를 거스리는 발언을 했다가 나치 장교였던 전력이 이스라엘에 의해 공개되는 망신을 당해야 했다. 독일의 지성으로서 1999년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가 “독일도 이스라엘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아무런 메아리 없이 흩어졌다. 문제는 국제적으로 규탄받는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악행에 대해서도 독일이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독일의 유보적인 입장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초토화작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외국인 적대의식’은 독일사회를 규정하는 열쇠말의 하나이다. 독일이 일본과 이스라엘에 대해 무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간접적인 가해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사 반성이 대외 전시용이라는 비난을 받게 만들 수 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게 고개드는 ‘전후세대는 나치범죄에 책임이 없다’는 ‘이중도덕’을 극복하고, 일본을 향해서는 ‘가해국 연대책임’을,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팔레스타인 생존권’을 존중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독일의 과거 청산은 일제 잔재의 청산, 분단 유산의 청산,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 계승 등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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