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日 정부, 올해는 디플레 탈출 축포 터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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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4-01-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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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요즘같이 물가가 오르는 시대에 아직도 저물가를 걱정하고 여기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나라가 있다. 그것도 그냥 ‘한번 해볼까’라는 심정이 아니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필사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 바로 우리 이웃 나라 일본의 얘기다. ‘아니 지금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나라가 아직도 있는가’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나 이는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바로 지금’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돈 풀기 정책과 그로 인해 발생한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의 파도이다. 그 결과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2022년 4월~2023년 3월)에 3.2% 상승하였고 2023년 3.0%, 2024년 2.5% 상승이 전망(내각부)되었다. 3년 연속 2.0% 이상의 물가 상승을 달성할 가능성이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독자들에 따라서는 ‘물가는 낮을수록 좋은데 왜 2% 이상의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정책목표로 삼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도 되지 않는 낮은 물가, 아니 물가가 오히려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지난 30여 년간 일본이 당해온 고초는 상상 이상 큰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본 국민과 일본 기업의 사기저하이다. 일본 국민은 지속적인 소득 향상을 기대할 수 없는 경제 여건하에서 극도의 소비 절약을 통한 생존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를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저축을 최대한으로 늘림으로써 현재 및 노후 소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특히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 생존을 위한 자산 형성을 위해서는 절약과 저축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은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극도로 높아진 시장 여건에서 가격을 올릴 수 없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를 잃을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기업으로 하여금 오히려 가격을 인하하려는 경쟁을 유발하고 원가 절감과 가격 파괴가 기업 경영의 기본적인 전략으로 채택되었다. 이러한 기업 경영 전략하에서 기업은 인건비를 압축하기 위해 정규직 고용의 감축과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 외주화, 임금 인상 억제를 지속해 왔으며 그 결과로 좋은 일자리는 감소하고 임금은 지속적으로 정체되었다. 임금과 안정된 일자리의 감소는 다시 절약을 강제하고 절약은 기업의 원가 절감 경쟁을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는 어느덧 가난해진 일본이다. 지난 30여 년간 다른 나라들은 물가와 명목소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지만 유독 일본은 정체되어 왔다. 문득 눈을 들어 다른 나라를 돌아보니 일본보다 더 비싸진 물가와 더 많아진 소득이 들어온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고 일본 국민들은 의아해한다. 자신들은 필사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에 적응하고 또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선하고 도덕적인 경제적 선택을 그대로 용납하지 않을 태세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는 정부 선언을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어한다. 2023년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신선식품 및 에너지 제외)와 2.9%(신선식품 제외)를 기록하였다. 199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 전망에 따르면 2024년의 경제성장률은 실질 1.3%, 명목 3.0%이다. 물가 상승률보다 명목성장률이 더 높게 실현될 것으로 전망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요인의 종합적인 인플레이션 요인을 보여주는 GDP 디플레이터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3분기에 5.3%로 1995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 ‘디플레이션 탈출 선언’을 미루고 있다. 일본은행도 통화정책 전환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요즘 엔화 약세가 나타나면서 엔화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러한 투자의 배경에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철회한다는 결정을 하는 순간 엔화 가치는 크게 튀어오를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2023년 12월 19일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철회를 미루었다. 왜일까?  
 디플레이션 탈출에는 아직도 중요한 관문이 남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현재 물가 상승의 지속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비용 상승이고 다른 하나는 수요 증가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의 물가 상승이 수요 증가보다는 비용 상승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더구나 임금 상승에 따른 서비스 비용보다 제품 비용의 일시적 상승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기 때문에 현재의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보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위해서는 서비스 가격의 상승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관찰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물가 상승의 또 다른 요인인 수요 증가를 보면 일본 경제는 여전히 그 공급 능력에 비해 수요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2023년 3분기 일본의 GDP갭은 =0.6%를 보였다. 그러므로 수요 주도의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뒷심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중요한 관문은 첫 번째 관문과 이어지면서도 이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부분이다. 바로 임금 상승의 규모와 속도이다. 물가가 오른 것을 반영하여 임금이 충분히 올라줘야 경제의 선순환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이 부분에 있어서 아직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임금 인상을 둘러싼 협상은 연초에 시작하여 3~4월쯤이면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고 정부의 디플레이션 탈출 선언과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전환 결정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그 시기가 더 늦추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임금 상승의 지속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필자는 2019년에 발표한 보고서 '일본 임금 정체의 요인 분석과 정책적 시사점'(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지속적인 임금 상승을 위해서는 일본 노동시장의 근본적 개혁과 생산성 향상이 필요함을 지적한 바 있다. 일시적인 물가 상승을 커버하기 위한 임금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경제의 선순환을 불러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나 일본은행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므로 그 고민은 더욱 깊어갈 것이다. 미국은 통화정책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그전에 통화정책 전환이 필요함에 마음이 초조하다. 일본 정부는 과연 2024년 상반기에 ‘일본 경제가 드디어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다’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탈출 선언을 토대로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엔화와 엔화 자산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만족할 만한 투자수익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그러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필자의 생각이 빗나가기를 희망한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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