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어도 전화 못 끊어"…근로감독 사각지대 놓인 '콜센터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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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보경 기자
입력 2023-09-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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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XXX들아, 아까 나랑 상담한 X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내가 소송 걸 거니까. XX. 일 좀 똑바로 하라고."

한 보험사 콜센터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업무 중 고객에게 욕설을 들었지만 전화를 끊지 못했다. 상사한테서 "고객이 욕을 해도 업무 관련 내용이 있으면 답변하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어도 동료가 대신 응대해야 해 부담도 느꼈다. A씨는 상담을 마친 후에도 쉬지 못하고 다른 고객을 응대해야 했다.

콜센터 근로자들이 법에서 규정하는 보호를 받지 못해 열악한 업무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콜센터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민간부문 콜센터에 대해 감정노동자 보호체계 구축 컨설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근로감독을 통한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건강 악화
7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보험사 콜센터 상담원 B씨도 악성 고객에 대해 울며 겨자 먹기로 상담을 진행했다. 더운 날씨에 타이어가 펑크났다며 욕을 하는 고객에게 공감 표현을 해야 했다. 전화를 끊으면 대외 평가 점수를 낮게 받기 때문이다. 점수가 낮으면 월급이 깎인다. A씨는 상급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알아서 하라"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상담 뒤에도 쉬지 못했고 점심을 거른 채 전화를 받았다.

공공기관 콜센터 상담원 C씨는 하루 5시간을 쉬지 않고 상담하지만 물도 마시지 못한다. 화장실에 가면 팀장이 불러 "무슨 일이냐"며 심하게 닦달하기 때문이다. 상담 후 이력 작성 등 후처리 업무를 하면 하루 종일 쉬지 못한다. 그씨는 "점심도 먹지 못할 때가 많다"고 호소했다.
 
자료민주노총
[자료=민주노총]
열악한 콜센터 근로자 업무 환경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민주노총이 올해 4~5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콜센터 근로자 618명 등 총 12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점심시간을 포함해 하루 1시간 이상 쉬지 못하는 근로자가 10명 중 4명(39.4%)에 달했다. 10명 중 1명(11.1%)은 휴게시간이 30분 미만이라고 답했다. 근로기준법 54조는 근로자 근로시간이 8시간일 때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 1시간 주도록 규정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콜센터 근로자들은 상담원 간 실적 경쟁으로 휴게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고객에게 폭언을 들어도 전화를 끊지 못하기도 했다. 2018년 근로자가 폭언 피해를 입었을 때 업무를 중단하고 휴게시간을 부여하도록 하는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건강 문제를 겪는 비율도 타 직군보다 높았다. 안전보건연구원이 2017년 실시한 제5차 근로환경조사에선 텔레마케터 직군에서 두통을 겪는 비율이 34.3%로 전체 직업(13.4%) 대비 2배를 넘었다. 불안감을 느끼는 비율(10.8%)도 전체 직업(3.1%)에 비해 3배에 달했다.
"근로시간 준수 여부 살피는 근로감독 병행돼야"
고용부는 콜센터 근로자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공공부문 콜센터를 중심으로 실태조사에 나섰다. 고용부 산하 산업안전보건공단은 감정노동자 보호체계 구축을 위한 컨설팅을 실시한다. 콜센터 근로자를 포함한 감정노동자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이행 여부를 살피는 지도점검도 나선다. 

고용부 관계자는 "컨설팅 대상은 1000개 업체로 이 중 민간부문 콜센터는 380개가량"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감정노동자 보호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살피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휴게시간이 지켜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규정 위반은 현장에 비일비재하다. 근로시간 규정 위반 관련 적발 건수는 한두 건에 그친다"며 "임금체불, 해고 등에 비해 중요도가 낮다는 인식으로 인해 방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사안에 비해 중요도가 낮다는 인식이 크지만 근로자 사망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규정 준수도 중요하다"며 "근로감독 체계가 기본적인 노동조건까지 살필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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