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그림자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빈센트 발 감독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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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3-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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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상상력을 더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그림자 아티스트 '빈센트 발' 감독. 그는 스스로를 '쉐도우 올로지스트(shadowologist)'라고 소개한다.
유리잔은 뜨거운 열기가 한층 식은 노을 진 사막이 돼 사람과 낙타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운동화는 만화 캐릭터 심슨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그와 함께 일상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빈센트 발 감독 사진 김호이 기자
빈센트 발 감독 [사진=김호이 기자]
-그림자 아트를 하게 된 계기가 뭔가. 
저는 원래 영화감독인데요. 햇살이 좋은 어느 날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창가에 들어오는 햇빛에 제 찻잔이 비췄는데 그게 코끼리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거기에 눈, 코, 입과 무늬를 그려서 코끼리 모습의 그림자를 사진으로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많이 놀랐고 좀 더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어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어디서 영감을 얻나.
보통은 물건 하나로 시작을 하는데 처음에는 집에 있는 물건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오래하다 보니까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사용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특이한 물건들을 구입해서 작품을 만들며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무 물건과 그 물건의 그림자와 흰 종이, 그리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작업을 하려고 해요.

이리저리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면서 떠오를 때까지 찾다가 뭔가 떠오르면 작업을 해요. 구름을 보는 것과 비슷해요. 어릴 때 구름을 보면 모양이 계속 바뀌는데 그 구름을 보면서 여러가지 형상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해요.
제 스스로도 영감이 떠오르는 게 확실하지 않은데 머릿속 깊은 곳 어디선가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물건과 작품의 교차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림자 아트의 기준은 뭔가.
결과물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사물에 집중하는 게 좋아요. 그런 습관을 들이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림자 아트는 그림 실력이 중요하지 않아요. 빛이나 태양이 그림자로 이미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저는 그림자 속에서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찾아서 선만 더해서 제가 상상했던 걸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잘하려는 부담감을 가지면 잘될 것도 안될 수 있기 때문에 상상했던 걸 보여주는 정도만 되면 충분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스스로를 쉐도우 올로지스트라고 소개하는데 쉐도우 올로지스트는 뭔가.
이 작업을 하다보니까 작업에 대한 이름을 정해야 될 시점이 왔는데 그래서 어떤 이름을 지어야 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쉐도우 두들, 쉐도우 그래픽을 생각하다가 과학적인 이름을 짓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쉐도우 올로지(그림자학)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그림자 아트가 영화작업에도 영향을 주나.
그림자 아트를 시작하고 나서 단편 영화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림자 속 세상에 대한 영화인데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줬어요. 영화 제작은 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힌 작업인데 그림자 아트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어서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 부분들을 영화 제작에도 적용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림자 아트에서 느낀 심플함을 애니메이션 작업에 접목시키려고 해요.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왼쪽부터) 김호이 기자와 빈센트 발 감독의 인터뷰 장면 [사진=김호이 기자]
-그림자 올로지스트와 영화감독으로서 충돌하게 될 때는 없나.
저는 직업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영화감독 외에도 영화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각본 작업도 하는데 이런 직업들을 한번에 여러가지 소화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잘 진행하고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빈센트 발은 어떤 사람인가.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성격도 여러가지가 나올 때도 있어요. 영화감독을 하다 보면 많은 얘기들을 빠르게 해야 될 때도 있고 있어요. 그림자 아트를 하면 방에서 조용히 펜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아무 말도 안 하게 될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 여러가지 성격을 발견하게 되면서 실제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돼요.
 
-그림자 아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상상력을 가지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감독이라 제 작품으로 전시회를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쉐도우 올로지를 통해 작품이 쌓이다 보니까 전시회를 하게 돼서 스스로 너무 놀라워요.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창작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나.
시작은 사과나 거리 풍경 등 사소한 것들을 그리면서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본인은 쉬운데 남들한테는 어려운 게 될 수 있어요. 폴 메카트니를 따라한다고 폴 메카트니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본인 스스로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림자 속에 어떤 메시지들을 담으려고 하고 있나.
작품 활동을 하면서 담고 싶은 메세지는 없는데 제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관찰하고 싶어요.
 
-빈센트 발 그리고 그림자 아트의 정체성은 어디서 비롯되나.
저는 벨기에 출신인데 벨기에는 독특한 나라라고 생각해요.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나 만화 '땡땡의 모험' 작가인 에르제 같은 사람들이 나온 나라인데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면서 파생된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하는 습관이나 루틴이 있나.
저는 항상 음악을 들어요. 매달 플레이리스트를 바꾸면서 제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음악을 듣고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게 원동력을 줘요.
 
-어느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작품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가지고 다는 것들이 있나.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디지털로 작업을 하기도 해요. 노트랑 펜을 늘 가지고 다니고요. 처음에는 햇빛으로 작업을 많이 해서 종이와 펜을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에 엎드려서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웃음).
근데 햇빛이 빨리 움직이다 보니까 요즘에는 조명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림은 수정할 수 있지만 순간의 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지는 그림자 아트는 수정이 불가능 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없나.
제가 생각할 때 그림자 아트의 최고의 장점은 휘발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림자 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조명이 꺼지면 작품이 없어져요. 저한테는 그게 매력이에요. 휘발되는 작업들을 하다보니 옮겨다녀야 되는 전시 특성상 새로운 작업들을 계속 해야 돼요.

물건만 가지고 가서 작업을 하는데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려면 정확한 각도가 중요해요. 조금만 틀어져도 작품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 어려운 점 중 하나예요.
 
빈센트 발 감독이 전하는 메세지 사진 김호이 기자
빈센트 발 감독이 전하는 메세지 [사진=김호이 기자]
-그림자 아트의 매력은 뭔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작품이 나오는데 그게 항상 놀라워요.
 
-직업 만족도는 5점 만점에 몇 점인가.
힘들 때는 1점 주고 싶을 때도 있고 좋을 때는 10점 주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 제 직업을 사랑하고 그림을 그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에요.
 
사진 김호이 기자
빈센트 발 감독 [사진= 김호이 기자]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해나갈 건가.
책이나 SNS 등에서만 소통을 했었는데 현재는 전시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놀라운 걸 좋아해요. 기대하고 예측하기보다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기다리는 걸 더 선호해요.
 
-마지막으로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무섭고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휴대폰을 멀리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관찰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사진 김호이 기자
(왼쪽부터) 빈센트 발 감독과 김호이 기자와 함께 [사진=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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