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인사이드] 대법 "현대차,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 무효"…45년 만에 판례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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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언 기자
입력 2023-05-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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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대법원]

회사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노동조합 등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취업규칙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에 따라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의 유효성을 판단해 온 종래 판례를 45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에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는 취업규칙을 전체 직원들에게 적용해오다 2003년 주 5일제가 도입되자 과장급 이상의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만들었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에는 종전 취업규칙과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주던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총 인정일수에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현대차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만들면서 간부사원 89% 동의는 받았지만 과반수 노조인 현대차노조의 동의를 받지는 않았다. 이에 일부 간부사원들은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했다"며 미지급된 연월차 휴가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부당이득은 법률상 원인 없이 현대차가 이득을 얻고 이로 인해 간부사원들에게 손해가 발생해야 성립하는 것"이라며 "간부사원들이 회사에 종전 취업규칙에 따른 미지급 연월차 휴가수당을 직접 청구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 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며 "그럼에도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대법 "근로자 집단적 동의권, 중요한 절차적 권리…'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없어"
종래 대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및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에 따라 취업규칙의 변경으로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다고 해서 무효라고 할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전 판례를 변경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대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헌법 제32조 3항에 근거하고 근로기준법 제4조가 명시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라며 "변경되는 취업규칙 내용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 단서의 명문규정에 반하고 헌법정신과 근로기준법의 근본 취지,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에 위배된다"며 "종전 판례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확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려워 법적 불안정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 항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전 판례에 따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판단한 원심에는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하지 않아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근로자가 동의권 남용시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가능" 예외 인정…'집단적 동의권 남용' 새 법리 제시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서 종전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아닌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새롭게 제시했다. 또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는지 여부는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이 있었으며 △그럼에도 근로자 측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없이 취업규칙의 변경에 반대했다는 사정이 있는 경우가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이 갖는 절차적 중요성을 강조해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근로조건 기준 결정에 관한 헌법 및 근로기준법의 이념과 취지에 보다 부합하도록 했다"며 "그러면서도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 예외적으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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