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CBDC는 약이 될까 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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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금융부 부장
입력 2023-01-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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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을 거듭하며 ‘디지털 원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일 ‘2023년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CBDC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같은 민간기업 결제서비스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중앙은행이 ‘디지털 원화’ 발행을 검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외적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 간 새로운 통화 패권경쟁이 있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에 대해 실증실험을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에 CBDC를 넣어 물건 구입에 실제 활용하고 있다. 중국 CBDC 가맹점은 수수료 없이 대금을 즉시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뿐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CBD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CBDC 발행 목표를 2026년으로 삼고 있다. 일본은행(BOJ)도 올해부터 시중은행과 실증실험에 들어간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연준이 ‘디지털 위안화’가 달러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며 적극적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이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를 경계하는 이유는 중국에서 투자와 융자를 받는 동남아시아 국가와 아프리카에 보급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가 기업 간 거래에 사용되기 시작하면 중국에 진출한 모든 기업이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새로운 국제결제규격으로 자리 잡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위안화’가 세계 통화 체제 중심에 자리 잡은 달러를 위협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에 대한 실증실험은 일부 스마트폰 결제에 한정되는 등 당초 예상했던 속도보다 더디다. 중국 인민은행이 CBDC 연구에 착수한 게 2014년인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식 발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정식 발행을 주저하는 이유가 기존 은행 시스템을 무너뜨릴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CBDC 도입 후 예상되는 가장 큰 변화가 은행 비즈니스에서 예금을 몰아낼 가능성이다. 돈은 크게 보면 예금과 현금으로 나뉜다. CBDC는 기본적으로 현금을 디지털로 대체해 저장하는 수단이라 현금과 같다. 현금은 지갑 속에 그대로 둘 수 있다. 그러나 예금은 은행이 파산하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예금은 잃을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현금은 그런 리스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은행 예금에서 돈을 인출해 안전한 CBDC로 대체해 보관하려 할 것이다.

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은행은 기존 예금 비즈니스를 다시 검토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예금 부문과 대출 부문을 분리하는 은행의 새로운 형태를 예상한다. 예금을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만으로 운용해 입출금과 결제만 서비스하는 완전준비은행(Full-reserve banking)이 등장할 수도 있다. 대출 부문을 맡은 은행은 예금이 아닌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해 융자를 제공하게 된다.

지금 은행 시스템은 예금을 유치해 융자를 실행하는 중개 기능과 안전하게 거래하는 결제 기능이 합쳐져 있다. 그래서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일어나면 결제 시스템까지 마비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CBDC 도입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의견도 일부 있다. 예금과 대출, 결제 서비스를 분리하면 은행 시스템에서 리스크를 그만큼 낮출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세계 중앙은행들은 CBDC 도입으로 은행 시스템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CBDC로 돈이 몰리지 않도록 이자 0%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에 이자를 가산하지 않는다. 다른 국가 중앙은행들도 CBDC 보유 금액에 상한을 두고 은행 예금에서 대량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CBDC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되면 은행 시스템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변화가 두려워 CBDC 활용을 제한한다면 은행 시스템은 현상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화폐는 기존에 있던 단순 스마트폰 결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고민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CBDC는 약이 될까, 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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