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암호화폐 거래소의 서킷브레이커 도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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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명예회장
입력 2022-12-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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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명예회장[사진=아주경제DB]

스프링복은 아프리카 남서부 지역에 서식하는 중간 크기 영양(가젤)의 일종으로 시속 88㎞까지 달릴 수 있으며 급하면 4m 높이까지 점프도 한다. 그런데 가끔 이 스프링복은 떼지어 강이나 절벽으로 뛰어들어 집단으로 사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의 습성을 연구한 아프리카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선천적으로 왕성한 식욕을 타고난 스프링복이 무리 안에서 풀을 뜯어 먹다가 더 싱싱한 풀밭을 발견하면 다른 녀석에게 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수백 마리가 달리기 시작하고 결국 목적을 상실한 채 경쟁적으로 달린다고 한다. 강이나 절벽이 나타나도 습관적으로 앞의 무리를 제치는 탓에 떼죽음을 당한다는 설명이다.

학자들은 이렇게 맹목적으로 이유도 모른 채 앞 사람만 따라가기 급급한 현상을 '스프링복 현상'이라 칭한다. 맹목적인 추종으로 대규모 참사가 나타나는 현상은 인간 세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FTX에서 발생한 코인런이 대표적인 사례다.

FTX 사건의 발단은 미국 암호화폐 관련 매체 코인데스크의 기사 보도다. 코인데스크는 해당 보도를 통해 FTX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재무제표에서 FTX의 자체 발행코인(FTT)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을 받아 몸집을 키워온 정황이 발견됐다며 FTX의 재무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달 7일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이 보유한 약 5억 달러(약 6500억원) 상당의 FTX FTT를 모두 매각하겠다는 트위터 게시물을 올리면서 FTT 가격이 순식간에 80% 가까이 폭락했다. 결국 대규모 코인런이 시작됐다.

사건 직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바이낸스와 FTX 간의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다음날 새벽 자오창펑은 운영 투명성을 위해 회사 포지션 변동을 고지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명 트위터 게시물을 올려 잠시 조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몇 달 전 루나 사태에 크게 놀란 일부 투자자들이 FTX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코인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코인런에 암호화폐 출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파산 사태로 확대됐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코인 가격이 동반 폭락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루나 사태에 이어 다시 한번 암흑기를 맞이했다. 인류 역사상 모든 투기와 버블의 탄생, 소멸 과정을 살펴보면 일반 투자자 대부분은 스프링복처럼 앞에 있는 더 좋은 풀을 차지하기 위해(더 좋아 보이는 투자 상품에 먼저 투자하기 위해) 무작정 앞으로 치고 나갔다가 절벽(버블붕괴, 위기)을 발견하지 못하고 집단 손실을 낸다.

다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은 쉽고 외롭지 않아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결코 좋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필자는 암호화폐 시장에 진출한 이래 비트코인·이더리움 이외의 코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세계 각국 금융 당국의 관리 제도가 미비한 데다 통일된 관리 체계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FTX 사태와 비슷한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리스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FTX 사태로 암호화폐 시장이 지닌 대부분의 악재가 모두 드러났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버블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암호화폐 시장이 자리 잡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울러 필자는 이번 FTX 사태를 계기로 세계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간에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제도 도입을 강력히 촉구한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가 일정 폭 이상 급락할 때 주식 거래를 일시 정지시켜 시장을 안정시키는 제도다. 원래 서킷브레이커는 모터 등 전기 장치에 전기가 과도하게 흘러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회로를 끊어 화재나 장치 손상을 방지하는 전력 차단기를 말한다. 흔히 '두꺼비집'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킷브레이커는 미국 최악의 주가 대폭락 사태로 불리는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이후 주가 급변을 인위적으로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처음 도입한 제도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9년 10월 뉴욕 증시가 다시 폭락했을 때 이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각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다소 늦은 1998년 12월 7일 국내 주식 가격제한폭이 상하 15%로 확대되면서 거래소 시장(현 유가증권시장)에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도입됐다. 코스닥시장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예기치 못한 주가 대폭락을 경험하면서 그 필요성이 제기돼 그해 10월 도입됐다.

절벽 앞에서 누군가 꽹과리를 치고 소리를 질러 선두 스프링복의 방향을 바꿀 수만 있어도 대규모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이 역할을 서킷브레이커가 할 수 있다. 서킷브레이커는 투자자들이 잠시 숨을 고르며 지금 투매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할 기회를 주고 의견 교환과 정보 확인 과정을 만들어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당 거래소나 암호화폐 운영자들은 대책을 마련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암호화폐 시장은 수많은 투자자가 몸담고 있고 미래 금융시장의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당국의 조속한 사고 예방 체계 구축과 더 적극적인 제도화와 참여로 스프링복 현상에 의한 대규모 손실 차단을 서둘러야 한다. 금융시장의 각종 규제와 시스템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실과 눈물로 그 바닥을 채워온 역사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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