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영 법무법인 시공 변호사
우리는 대부분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할 것이라 믿는다. 시장 참여자들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상관찰’하며 합리적인 투자를 한다. 이는 우리가 시장을 신뢰하는 ‘자연스러운’ 전제이다. 하지만 2010년 11월 11일, 이 전제는 단 10분 만에 무너졌다. 장 마감 10분 전 단일 계좌에서 2조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매도 물량이 쏟아져나왔고 코스피200 지수는 254.6에서 247.51로 폭락했다. 누군가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누군가는 447억원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는 예상관찰의 영역이 아니었다. 명백한 ‘조종관찰’, 즉 시장을 인위적으로 뒤흔든 조종 행위였다.
무려 13년간의 지루한 법적 다툼 끝에 이 오래된 사건은 2023년 12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17다249929 판결). 판결은 충격적이었다. “시세조종 행위는 맞지만 배상 책임은 없다”는 모순적인 결론이 내려졌다. 불법은 인정되었으나 정의는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이 판결은 금융 시장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사건 피해자(원고)들은 코스피200 지수가 올랐을 때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해자(피고·도이치은행)는 지수가 폭락하면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매수했다. 도이치은행은 지수가 올랐을 때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타인에게 팔기도 했다. 지수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투기적 포지션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만기일 오후 2시 50분, 그들은 2조4000억원의 주식을 투매해 인위적으로 지수를 폭락시켰다. 그 결과 도이치은행은 자신들이 설계한 폭락 속에서 447억원의 이익을 실현했다.
대법원은 도이치은행의 행위가 “현물시장(주식)과 파생상품시장(옵션)을 연계한 불법적인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바로 ‘상당인과 관계’의 부재 때문이었다. 법원은 원고가 콜옵션을 도이치은행이 아닌 제3의 금융사에서 샀기에 법적으로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아니라는 점, 도이치은행이 시장을 조종한 목적은 자신들이 보유한 풋옵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 원고가 보유한 콜옵션에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원고의 손해를 가해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직접적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간접적이고 우연한 피해로 본 것이다. 자본시장의 익명성과 복잡성을 고려할 때 이는 피해자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논리였다.
이 판결은 금융 시장을 넘어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해 세 가지 냉소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불법’과 ‘정의’는 동의어가 아니다. 법원은 가해자의 행위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면서도 피해자의 정의(손해배상)는 외면했다. 법의 목적이 공정성과 투자자 보호에 있다면 447억원의 불법 이익을 챙긴 가해자와 모든 손실을 떠안은 피해자가 나오는 이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둘째, ‘조종자’는 ‘관찰자’를 이긴다. 다수의 예상관찰자들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관찰하며 규칙을 따랐다. 하지만 2조4000억원의 인위성을 동원한 단 한 명의 조종관찰자가 나타나자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패배했다. 이는 비단 주식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 권력, 자본을 독점한 소수가 게임의 룰 자체를 조종할 때 성실하게 룰을 따르는 다수가 패배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셋째, 복잡성은 불법의 방패가 된다. 대법원이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은 현대 사회의 복잡성이 불법행위의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짜뉴스로 인한 여론 왜곡, 알고리즘에 의한 편향, 거대 자본의 시장 교란 등 피해는 명백하지만 그 책임의 주체와 법적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이 판결은 관찰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씁쓸한 질문을 남긴다. 단순히 규칙을 준수하며 예상관찰만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참여하는 이 게임 자체가 누군가의 인위성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인위성에 대해 법이 제대로 된 책임을 묻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질문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도 모른다.
무려 13년간의 지루한 법적 다툼 끝에 이 오래된 사건은 2023년 12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17다249929 판결). 판결은 충격적이었다. “시세조종 행위는 맞지만 배상 책임은 없다”는 모순적인 결론이 내려졌다. 불법은 인정되었으나 정의는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이 판결은 금융 시장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사건 피해자(원고)들은 코스피200 지수가 올랐을 때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해자(피고·도이치은행)는 지수가 폭락하면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매수했다. 도이치은행은 지수가 올랐을 때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타인에게 팔기도 했다. 지수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투기적 포지션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만기일 오후 2시 50분, 그들은 2조4000억원의 주식을 투매해 인위적으로 지수를 폭락시켰다. 그 결과 도이치은행은 자신들이 설계한 폭락 속에서 447억원의 이익을 실현했다.
대법원은 도이치은행의 행위가 “현물시장(주식)과 파생상품시장(옵션)을 연계한 불법적인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바로 ‘상당인과 관계’의 부재 때문이었다. 법원은 원고가 콜옵션을 도이치은행이 아닌 제3의 금융사에서 샀기에 법적으로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아니라는 점, 도이치은행이 시장을 조종한 목적은 자신들이 보유한 풋옵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 원고가 보유한 콜옵션에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원고의 손해를 가해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직접적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간접적이고 우연한 피해로 본 것이다. 자본시장의 익명성과 복잡성을 고려할 때 이는 피해자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논리였다.
둘째, ‘조종자’는 ‘관찰자’를 이긴다. 다수의 예상관찰자들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관찰하며 규칙을 따랐다. 하지만 2조4000억원의 인위성을 동원한 단 한 명의 조종관찰자가 나타나자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패배했다. 이는 비단 주식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 권력, 자본을 독점한 소수가 게임의 룰 자체를 조종할 때 성실하게 룰을 따르는 다수가 패배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셋째, 복잡성은 불법의 방패가 된다. 대법원이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은 현대 사회의 복잡성이 불법행위의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짜뉴스로 인한 여론 왜곡, 알고리즘에 의한 편향, 거대 자본의 시장 교란 등 피해는 명백하지만 그 책임의 주체와 법적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이 판결은 관찰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씁쓸한 질문을 남긴다. 단순히 규칙을 준수하며 예상관찰만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참여하는 이 게임 자체가 누군가의 인위성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인위성에 대해 법이 제대로 된 책임을 묻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질문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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