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집단 극단화와 빈곤 포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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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11-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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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 현장 취재기자 시절 심심치 않게 미담 기사를 썼다. 사회 및 봉사단체 또는 독지가가 어려운 이웃에게 현금이나 물품을 전달했다는 보도였다. 때로는 드러나지 않은 선행을 보도하기도 했다. 언젠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연말연시 봇물 이루는 관행적인 기부 행태까지 시시콜콜 보도해야 하는지였다. 데스크는 “그렇게라도 하는 게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길이다. 1000원짜리 한 장 선뜻 내지 않는 게 우리 사회다. 언론 보도는 의식적일망정 지갑을 열게 하는 순기능을 한다. 그런 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면 기꺼이 보도하고 기부 행렬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같은 심리는 ‘평판 압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면 구성원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인지 심리학 용어다. 공중에게 자신의 선행을 알릴 수 있는 언론 보도는 평판 압력을 설명하는 적절한 수단이다.

# 지난주에는 강의 시작에 앞서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를 주제로 토론했다. 정치권에서 불거진 빈곤 포르노를 학생들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의외로 용어 자체를 처음 접한 학생들이 많다는 데 놀랐다. 필자 또한 이슈가 제기되기 전까지는 생소했다. 학생들은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를 접하는 순간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됐다고 했다. ‘빈곤’보다는 ‘포르노’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대학생들이 이럴진대 일반인들이 빈곤 포르노를 접했을 때 어땠는지 가늠됐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를 비판하기 위해 빈곤 포르노를 언급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의도라면 일단 성공한 셈이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혼자라면 하지 않을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긴다”며 집단 극단화를 경고했다. 장 최고위원은 진영이라는 집단 안에서 극단적인 용어를 선택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김 여사가 의료 취약 계층과 찍은 사진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장 최고위원이 쏘아 올린 공은 정치권을 넘어 진영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장 최고위원은 “빈곤 포르노는 사전적·학술적 용어이며 사과하지 않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인격 모욕적 언행이자 반여성적 발언”이라며 장 최고위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대통령보다 대통령 배우자가 더 주목받는 건 비정상이다. 김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줄곧 야당과 진보 언론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문제는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 측면에서 이목을 끌고 있기에 유감스럽다.

빈곤 포르노의 사전적 의미는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동정심을 불러 모으는 사진과 영상물을 뜻한다. 민주당은 김 여사가 정상 배우자들을 위해 마련한 공식 일정에 불참한 채 별도로 미공개 일정을 진행한 건 외교적 결례이자 또한 의료 취약 계층을 방문해 홍보 수단으로 촬영한 건 적절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정상 배우자를 대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앙코르와트 방문 일정을 마련했다. 한 진보 매체는 이를 두고 “관광산업에 집중하는 캄보디아 정부가 어디를 보여주고 어디를 감추고 싶은지는 명확하다. 굳이 감추고 싶은 의료 취약 계층을 방문해 촬영함으로써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며 비판 여론에 가세했다. 관광은 캄보디아 4대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로 코로나19 이후 크게 위축됐다. 2019년 캄보디아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661만명에서 2020년 130만명으로 급감한 데 이어 2021년에는 19만6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논란이 불거진 뒤 김 여사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연출한 흔적이 역력하며 어딘지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다. 14살짜리 소년을 가슴에 안은 것도 그렇지만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생뚱맞다. 세계 오지를 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쳤던 배우 오드리 헵번 사진과 비교하면서 김 여사의 부자연스러운 시선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가 세계 유명 관광지를 다니며 버킷 리스트를 완성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나머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홍보용 사진은 아닌지 싶다. 민주당 정부와 달리 우리는 놀러 다니는 대신 어려운 이들을 우선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조급함도 읽힌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면서도 불편하고 어색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제기하는 빈곤 포르노 시각에는 공감할 수 없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정치인 등 유명 인사를 동원하는 건 그들이 지닌 셀럽 이미지를 활용해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정치인 카터 전 대통령, 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김혜자, 정애리, 신애라, 스포츠 스타 박찬호는 다양한 영역에서 봉사함으로써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냈다. 설령 김 여사 사진이 연출됐다 해도 의료 수준이 낮은 캄보디아 의료 취약 계층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서두에 언급했듯 미담 보도가 망설이는 이들에게 지갑을 열 동기를 부여하듯 김 여사 또한 선한 영향력에 도움을 줬다면 오히려 장려할 일이다. 나아가 순방 때마다 해외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버킷 리스트 채우기에 연연했다는 전직 대통령 부인보다는 낫다는 시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빈곤 포르노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진전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제도와 시스템을 정비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는 게 우선이다. 또 외교 무대에서 국익을 위한 행보는 어떠해야 하는지 공론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매번 순방 때마다 사소한 꼬리잡기와 정쟁을 거듭하고 갈등을 부추긴다면 우리 정치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대통령 배우자가 외국 정상과 팔짱을 낀 걸 트집 잡고, 소외 계층 방문을 빈곤 포르노라고 깎아내릴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싫든 좋든 5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배우자라면 때로는 격려와 덕담도 필요하다. 상대 진영에 대한 관용과 아량,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한 정치는 언제 가능할까.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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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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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 살아온 과정이 얼마나 찔리기에 사전에 나오는 말을 가지고 고소를 할까요?
    글고 남자나 여자 나이 14살은 이성의 품에 그냥 안겨서 사진찍는 나이 아닙니다
    그 나이면 지금 사춘기 한참 지난 청소년입니다
    자연스런 사진 아니하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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