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 칼럼]이태원 사고에서 드러난 한국 경찰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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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2-11-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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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현안 보고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56명이 인파에 깔려 숨졌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어쩔 수 없었던’ 사고로 여긴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사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드러나는 경찰 대응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경찰이 좀 더 철저히 대응했더라면 사고를 막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사망자와 부상자를 최대한 줄였을 수는 있었을 것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경찰 대응은 문제투성이였다. 초기 대응은 물론이고 사고 이후 보고 체계도, 지휘관들 처신도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점은 경찰이 ‘도움을 요청하는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10월 29일 밤에는 사고 발생 네 시간쯤 전부터 4분 전까지 서울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에 사고 위험성을 알리는 신고 전화가 11건이나 들어왔다. 29일 오후 6시 34분 들어온 첫 신고 전화에서부터 긴박함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해밀톤호텔 골목에 있는 이마트24 있잖아요. 그 골목이 지금 사람들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거든요.압사당할 거 같아요. 이거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국민 절박한 목소리 귀담아듣지 않아
 

이 한 통의 신고에는 이태원 사고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정확한 위치, 몰리는 인파, 압사 위험성, 인파 통제 필요성. 경찰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다 들어 있었다. 오후 8시 9분 두 번째 신고 전화는 더 긴박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다”라고 했다. 비슷한 신고 전화는 사고가 일어난 밤 10시 15분쯤까지  이어졌다. 총 11건 중 9건은 사고가 난 골목 인근에서 들어왔다. 비슷한 장소에서 같은 내용의 신고가 잇달아 들어온 것이다. 더구나 11건 중에는 ‘압사’라는 말을 언급한 것도 6건이나 됐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압사 위험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11건 중 4건에 대해서만 현장 조치를 했다고 기록에 남겼다. 6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주변에 배치돼 있다”고 안내하는 수준에 그쳤다. 나머지 1건에 대해서는 경비 인력 배치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실제로 현장에 출동해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이 이 긴박한 목소리를 첫 신고 때부터 흘려듣지 않고 진지하게 들었다면, 그래서  바로 현장 출동 조치를 내려 인파 통제에 나섰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미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사고를 막는 것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경찰이 국민의 긴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음을 보여줘 국민에게 다소나마 안도감과 경찰에 대한 신뢰감을 줬을 수도 있다. 

경찰이 귀담아듣지 않은 것은 국민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소방당국의 지원 요청에도 늑장 대응을 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119로 사고 신고가 들어온 지 3분 만인 밤 10시 18분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경찰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밤 10시 56분쯤 다시 한번 서울경찰청에 다수의 경찰 투입을 요청했다. 소방청도 같은 시각 경찰청 상황실에 ‘경찰 인력, 차량 통제 필요 지원’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밤 11시 이후 대응을 시작했다. 사고 발생 45분이 지나 이미 사상자들이 경찰이나 119구급대, 시민들에게 실려나오기 시작할 때다.

보고 체계·지휘관 처신도 문제

소방당국은 밤 10시 59분부터 다음날 0시 17분까지 1시간 18분 동안 12번이나 용산경찰서·서울경찰청·경찰청 상황실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총 15번이었다. 경찰이 소방당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자 계속해서 지원 요청을 한 것이다. 경찰이 소방당국의 첫 지원 요청 때부터 적극 나섰더라면 인파와 교통을 통제해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소방대는 사고 신고 접수 직후 현장에 출동했지만 인파에 가로막혀 사고 현장 진입에 1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한시가 급한 순간에 길을 뚫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경찰 보고 체계도 엉망이었다.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 21분 뒤인 밤 11시 36분에야 사고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러 일이 벌어진 것은 일선 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 같은 지방청이나 본청인 경찰청 등 상부 보고 여부가 경찰서 상황실 근무자의 개인적 판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건을 보고할지 기준이 모호해 근무자 판단에 따라 보고 여부가 좌우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당일 밤 10시 53분 사고 발생을 처음 보고받았다. 소방청이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에 보고해서였다. 윤 대통령은 11시 21분 신속한 구급과 치료를 지시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정작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은 사고 발생도 모르고 있었다. 

경찰 지휘관의 처신은 어떤가.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은 사고 발생 5분 뒤인 밤 10시 20분 현장에 도착해 지휘를 시작했다고 경찰청이 취합한 당시 상황 보고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밤 11시 5분에 참사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용산경찰서가 공문서를 허위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용산경찰서장이 11시 5분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무슨 조치를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 당일 충북 제천의 사적 모임 캠핑에 참가했다가 밤 11시쯤 캠핑장에서 잠이 들었다. 이 바람에 경찰청 상황실이 11시 32분 처음 보낸 사고 발생 문자 메시지도 확인하지 못했고, 11시 52분 보고 전화도 받지 못했다. 다음날 0시 14분 세 번째 보고를 전화로 받고서야 사고 발생을 알았다. 경찰청장에게도 사생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긴박한 순간에는 어느 때고 즉각 보고가 이뤄지게 하는 체계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국민 여론과 정서에 '반응'하는 책임져야
 

국민의힘은 철저한 원인 조사와 함께 응당한 책임 추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의원들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경질도 주장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을 더 배치했다고 해서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다’고 말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상민 장관 파면은 물론이고 윤 대통령에 대한 직접 책임도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이태원 사고 추모 위령 법회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공개 석상에서 사실상 직접 사과를 한 것이다. 

현재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수사하고 있다. 특별 감찰팀도 만들어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를 감찰하고 있다. 수사와 감찰은 문제점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책에는 경찰의 112 신고 대응과 상부 보고 체계, 경찰과 소방당국의 협조 체제에서부터 대규모 인파 관리 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포함돼야 한다. 이게 앞으로 남은 가장 큰 과제다. 

동시에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의 책임은 ‘설명적 책임’과 ‘반응적 책임’으로 나눌 수 있다. 설명적 책임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책임을 말한다. 주로 사법부에 해당한다. 법원은 어떤 판결을 했을 때 왜 그렇게 판결했는지를 판결 이유로 밝혀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반응적 책임이란 국민의 여론과 정서에 적합하게 반응할 책임을 말한다. 국민 뜻에 따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주로 행정부에 해당한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이태원 사고에 경찰이 부적절하게 대응했다고 지탄하고 있다. 경찰이 직무를 태만히 했다고 여긴다. 이런 여론과 정서에 반응하는 게 반응적 책임을 지는 일이다. 누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경찰청장이 가장 먼저 ‘적절하게 반응해야 할’ 당사자일 것이다. 그리고 행안부 장관도 이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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