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20대 아들의 빈소를 지키는 세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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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희 수습기자
입력 2022-11-0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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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세 명의 빈소가 차려졌다. 고인들은 모두 20대 남성으로 너무 일찍 져버린 꽃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고인들의 빈소는 장례식장 가장 안쪽부터 나란히 위치했다.

중간에 빈소가 위치한 아버지는 연신 벽과 소파 등을 때리며 통곡했다. 반쯤은 울고 반쯤은 절규하는 소리가 한동안 장례식장 복도를 가득 메웠다. 아들 빈소 앞에서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입구에 빈소가 있던 아버지는 분노했다. 사고 당시 경찰 인력이 광화문과 용산구 시위 장소에 분산됐던 사실을 짚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고인의 여동생이 우느라 탈진하고 어머니도 우는 사이 묵묵히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허망한 마음은 같았다. 그는 본인 심정을 “마음을 추스를 수도 없고 추스르고 싶지도 않다”고 표현했다.
 
가장 안쪽에 빈소가 있던 아버지도 “스스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물만 난다고 했다.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고 추스를 몸조차 없다고,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기자는 외람된 존재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 현재 심정을 묻고 어떤 아들이었냐고 묻는다. 빈소에서 서성거리며 분위기를 읽고 질문할 타이밍을 잰다. 질문을 해야 하는데 감정이 앞서 울컥하기도 한다. 유족에게 외람된 질문을 던지는 건 단순히 이들이 얼마나 슬픈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지 못했을 때 그 충격과 슬픔은 개인이 오롯이 감내해야 함을 알리기 위함이다.
 
참사 다음날인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지 엿새째인 오늘, 경찰의 업무 태만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현장 지휘는커녕 보고조차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 모두 대통령보다 사건을 늦게 알았다.

이태원 참사로 156명이 사망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민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다만 분노의 화살이 엉뚱한 곳을 향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현장 영상이 퍼지면서 ‘밀자’를 외쳤던 ‘토끼머리띠남’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세월호 당시 ‘유병언 찾기’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 사람을 찾아내도 어떤 의도로 밀었는지는 알 수 없다”며 “SNS는 참고 정도로 하고 정확한 보도와 전문가의 해석을 수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의 지적처럼 인터넷 커뮤니티 분위기에 휩쓸려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국민을 위험에 방치한 행정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진=백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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