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경제를 지키는 정책에서 움직이는 정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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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입력 2022-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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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지난 10월 28일자 주요 일간신문들은 1면 머리기사에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와 같은 날 삼성전자 총수가 된 이재용 회장에 관한 뉴스를 비슷한 비중으로 나란히 배치했다. 이 같은 편집은 사설에서도 반복됐다. 신문 성향에 따라 제목은 달리 붙였지만 윤 정부에는 정책의 신속하고 과감한 실행을 요청했고, 이 회장에게는 삼성 신화의 재창출을 주문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발표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날짜에 삼성그룹이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발표하자 도하 거의 모든 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노 대통령이 “정부보다 삼성이 훨씬 힘이 있다”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민관이 협력해야만 나라 경제를 끌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직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는 첫 생중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 우선 정부가 위기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사실과 어떤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고 가는지를 국민들에 부각시키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일자리는 민간이 만들고 투자도 민간이 해야 효율이 높다”고 강조했다. 

4개월 반 전으로 돌아가 보자.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 모두 발언에서 “어려울수록 또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시장 주도로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당면한 민생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고질적인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위기 대응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민간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정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민간의 혁신과 신산업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와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관행적인 그림자 규제들을 모조리 걷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투자의 위축과 생산성 하락을 더 이상 우리 경제와 정치가 방관할 수 없다”며 “경제안보 시대의 전략자산인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의 R&D 지원과 인재 양성에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들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막는 노동시장,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낙후된 교육제도,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계속 가중시켜가는 연금제도는 당장이라도 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항공모함을 예로 들어 정부와 기업 관계를 설명했다. 세계 1위 미국 국방력을 상징하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선 수많은 미국 기업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와 기업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경제단체장과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이번 비상경제민생회의는 판교회의의 데자뷔인 셈이다. 다만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윤 대통령과 참석 장관들에게 위기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정권 출범부터 강조해 온 ‘민간 중시 경제’라는 초심(初心)을 지키려는 자세에는 평가하는 바가 크다. 윤 대통령이 꺼내든 경제 활성화 카드는 한마디로 규제 완화다. 

주 52시간제 규제를 유연하게 한다거나 근로자 30명 미만 영세 기업에 대한 연장근로 허용은 관련 기업과 종사 근로자들에겐 절실한 문제다.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외국인 인력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도 바람직하다.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적절한 조치다. 다만 고금리 여파로 자금경색 위기에 직면해 있는 기업들과 중소 증권사에 대한 지원책은 안 보였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산업을 위해 뒤늦게 K칩스법을 만들었는데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노동·교육·연금 등 경제 구조 개혁에 필요한 이슈도 언급되지 않았다.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이은 11월 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는 수출이 주안점이었다. 무역이 7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9월까지 23개월 연속 증가해 온 수출마저 2년 만에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논의된 ‘신성장 수출동력 확보 방안’의 구체적인 이행 방향을 정리했다. 5대 분야 세부 추진 과제에 대한 실행계획이다. 간략히 설펴보면 먼저 주력 산업에서는 2차전지 산업 혁신전략 수립, 주력 산업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올라 있다. 해외 건설에서는 원팀 코리아 수주지원단 첫 출정, 해외 건설업 특별연장근로 기한 연장이 들어 있다. 또 중소·벤처와 관련해 역동적 벤처 투자 생태계 조성 방안, 수출 중소기업 지원 방안이 꼽혔다. 관광·콘텐츠 분야는 전자여행허가제 개선, 호텔 등 외국인 고용쿼터 규제 완화가 담겼다. 디지털·바이오·우주 분야에서는 인공지능 초일류 전략, 디지털바이오 혁신 전략을 내세웠다. 

추 장관은 “정부 역량을 결집해 대부분 과제를 연내에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잇따라 열린 두 차례 회의는 올 1~3분기의 저조한 경제 실적을 반전시켜 내년도 신성장을 위한 모멘텀을 확보해야 하는 남은 4분기(10~12월)에 해야 할 긴급 처방이다. 곧바로 산업별로 심층 토론을 통해 규제 혁파에 가시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참석시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와 공감할 부분이 많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의 복합 위기 대처 모습이 눈에 띈다. 정권 지지율 하락과 엔화의 초약세, 지역경제 쇠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우리와 닮은꼴이다. 

기시다 총리는 2일 총리 관저에서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 등 자동차업계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자율주행과 탈탄소 등 업계가 안고 있는 과제를 총리가 직접 듣고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최근 물가 상승을 근거로 임금 인상을 기대한다고 말했고. 도요다 사장은 자동차 관련 세제 개선을 요청했다. 총리가 특정 업계와 협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대화는 정기적으로 여는 것으로 사전 조정됐다. 그 첫 회합인 2일에는 총리가 관련 업계의 기본적인 입장과 방침을 들었다. 다음번에는 공급망 관련 문제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経団連) 회장과 함께 자동차업계 대표들이 참석했다. 자동차 업계 구성원은 게이단렌에서 자동차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모빌리티 위원회’ 위원이다. 이 위원회는 자율주행과 차세대이동서비스(MaaS)를 살린 성장 전략을 정리해 정부에 제언한다. 탈탄소와 디지털화 같은 업계를 넘어선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정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경제·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관민이 협력해 새로운 성장에 도전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총리가 스스로 자동차 산업을 겨냥한 것은 정권이 중시하는 임금 인상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는 이날 회의에 맞춰 ‘임금 인상을 단행할 때가 아닌가’라며 맞장구쳤다. 기시다 총리는 이에 앞서 지난 10월 28일 정권 출범 후 두 번째 경제 대책으로 ‘고물가 극복·경제재생 실현을 위한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했다. 기시다 정권이 내거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기치 아래 ‘고물가와 엔저 대응’ ‘구조적인 임금 인상’ ‘성장을 위한 투자와 개혁’을 중점 분야로 한 종합적인 대책이다. 이 대책은 일본 경제 재생을 위한 ①물가 급등·임금 인상에 대한 대처 ②엔화 약세를 살린 지역의 ‘돈 버는 힘’ 회복과 강화 ③새로운 자본주의 가속 ④국민의 안전·안심 확보 등 네 가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향후 이 경제 대책을 뒷받침하는 2022년도 제2차 추경예산이 편성된다. 사업 규모는 대략 72조엔(약 720조원)으로 잡혀 있다. 대규모 재원을 신속하게 생산성 향상에 집중시킨다는 기시다 정권의 행동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 경제 위기의 시대를 맞아 대응 정책을 다듬어 나가면서 정책 실행 효과를 가시화해 나가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에 정책 자원을 중점화하고, 투자와 고용을 움직이는 정책 운영을 꾀해 나가야 한다.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계속 추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의 정책 틀을 넘어선 새로운 사고와 접근 방법으로 경제를 지키는 정책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성공 여부는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의 방식에 익숙한 경제관료들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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