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비혼주의를 말하는 이대녀에게…답 없는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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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 수습기자
입력 2022-10-3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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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치에 관심도 없어."
 
정치, 사회 문제에 누구보다 민감해 열혈 '이대녀(20대 여성)'를 자부했던 지인으로부터 얼마 전 이런 말을 들었다. 20대 초반부터 '비혼주의(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를 입에 달고 살던 친구였다. 결혼은 물론 사회에 대한 관심까지 놓아버린 냉소적 모습이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비혼주의' '비연애주의자'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세대별 결혼·출산에 관한 가치관 조사에서 MZ세대(1980~2004년생)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4.46%에 그쳤다. '자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비율도 4.22%에 불과했다. 2010년대 초중반에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란 신조어가 있었지만, 당시엔 사회 전반의 자조적 분위기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 달리 지금의 비혼주의는 채식주의나 종교관처럼 개개인의 확고한 신념으로 여겨지는 양상이다. 특히 남성들보다는 여성 중에서 비혼을 결심, 공공연하게 알리는 이들이 많다. 본인만 해도 얼마 전까지 비혼주의와 비출산을 좌우명처럼 외치고 다녔을 정도다. 비혼주의를 결심하기까지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본인의 경우엔 일하는 여성으로서 성공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2019년 1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39세 63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노동자로서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했다. 또 남성의 △양육 참여 △가사 분담 △육아휴직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때 자녀를 갖는 게 가능하다고 인식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부담을 비혼주의 확산의 주된 원인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지난 5월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결혼을 포기하거나 꺼리는 이유로 '내 집 마련 등 결혼 비용 증가'가 1위에 올랐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경제적, 경력단절 문제 등도 주요 이유였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출산·양육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라는 응답이 2위에 올랐다.
 
물론 결혼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진 점도 있다. 더 이상 결혼, 출산은 인생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5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 확산'은 각각 11% 응답률을 기록했다. 경제적, 사회적 부담 때문이라는 응답 다음으로 순위가 높았다.
 
실제로 지난해 혼인 건수도 전년보다 10%가량 감소한 19만3000건으로 사상 처음 20만건 아래로 떨어졌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다. 통계청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OECD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인 0.808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정치권이 한술 더 떴다. 지난 3월 대선 이후 이대녀는 정치에서 소외됐다. 대선 기간엔 결집했지만 이후로는 정치적 무관심을 대표하는 계층으로 전락했다. 선거기간 동안 정치권을 향해 쌓였던 분노의 파편은 냉소로 변했고, 그다음엔 관심 자체가 공중분해돼 사라졌다. 향후 또다시 정치권은 여성 표심을 모르는 체하고 남아있는 여성들의 정치 관심은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될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비혼주의의 문제점에 주목한 것은 아마도 낮아진 출산율 때문일 것이다. 여성만 임신·출산이 가능한 자연의 섭리는 바꿀 수 없더라도, 출산 이후부터는 결혼한 남녀에게 육아와 일터에서 동등한 역할과 처우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쏟아지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 속엔 임산부, 아내, 엄마만 있고 여성 청년, 여성 노동자는 없다. 심지어 20대 대선 정책에선 여성 노동자는 물론이고 여성 자체가 빠져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당 후보 모두 남초 커뮤니티를 돌며 이대남 공략에 바빴다. 여가부 폐지와 병사월급 인상을 내세우며 성평등 관련 질의엔 답변을 거부한 후보도 있었다. 여성 관련 정책은 새로울 것 없는 임신·육아·돌봄 관련 정책을 낸 데 그쳤다. 정치권이 갖는 여성에 대한 관심은 여성의 인구 재생산 기능에만 그친 것 아닌가 의문이 들었을 정도다.

특정 집단 표몰이를 위해 다른 집단은 손쉽게 배제해버리는 한국 정치 환경하에서, 이대녀들의 '비혼주의 유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국 정치 세태가 여성들의 선택지를 줄이고 있다.
 

[박새롬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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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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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녀들이 주제도 모르고 눈만 높아서그럼 지인생 누가 책임져줬으면 하는거지. 응 책임져줄사람없어 니들인생 니들이 알아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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