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중국을 닮아가는 미국,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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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9-1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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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진=이왕휘 교수]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산업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역설했던 미국이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산업정책을 채택한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포기하라고 중국 정부를 압박하였다. 2019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리커창 총리가 발표한 정부 업무보고에 ‘중국제조 2025’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에게 그만두라고 요구했던 산업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전략경쟁에 있다. 중국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미국은 중국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역점을 두는 산업은 중국의 ‘중국제조 2025’의 중점 사업과 별반 차이가 없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 취임 후 반도체와 배터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여 국유기업은 물론 민영기업을 지원하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을 미국에 구축하기 위해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에도 다양한 혜택을 약속하였다. 이렇게 미국은 중국과 거의 유사한 산업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거칠게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상무부는 지난 9월 2일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엔비디아와 AMD가 생산한 첨단 AI칩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였다. 국방부도 중국에서 조달한 특수합금으로 만든 부품을 문제 삼아 록히드마틴이 제조한 F-35의 인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였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14에 중국 양쯔메모리(YMTC)의 낸드플래시 메모리칩을 탑재한다는 보도에 대중 강경파 의원들은 상무부의 실체목록에 이 회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동맹국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 동맹국을 배려하지 않고 일방주의를 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Chip4) 동맹과 같은 유사입장국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대의 궁극적인 목표가 동맹국과 함께 발전하는 니어쇼어링이 아니라 미국에만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리쇼어링이라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대만과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과 인도, 동남아, 남태평양을 포괄하는 IPEF는 미국 내 투자 유치를 위한 유인책으로 활용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첨단산업 진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이 받는 혜택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IPEF와 반도체 동맹에 대한 유사입장국의 반응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9월 8~9일 IPEF의 첫 장관회의에서 인도는 자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필라1(무역) 협상에서 탈퇴를 선언하였다. 인도가 가장 중요한 협상에 불참함으로써, 인도태평양전략이 아시아태평양전략으로 전락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반도체 동맹은 아직 공식회의도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칩과 과학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미국의 인텔과 마이크론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TSMC를 포함한 해외기업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

미국의 중국 따라하기는 우리 기업에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우선주의를 밀어붙이는 바이든 행정부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우리나라는 미국의 최대투자국으로 34개 기업이 3만5403개 일자리(26%)를 창출했다. 이런 기여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은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해 차별을 걱정하고 있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담당국장은 물론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워싱턴 DC를 방문하였으나, 미국 정부의 반응은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점이지만, 미국은 동맹국의 요청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반도체 기업의 우려 사항은 ‘반도체 칩과 과학법’의 가드레일 조항이다. 이 조항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을 포함한 ‘우려 국가’에 신규투자는 물론 공장증설도 불가능하다. 이 조항의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범용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개선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이 두 기업은 세계 1위의 반도체 수입국이자 세계 2위의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기업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역내 의무조달 비율이 문제다. 2024년까지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부품과 소재를 50% 이상, 2028년부터는 100% 이상 사용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자동차에게만 세금 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이 2025년까지 이 기준을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가 공개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자동차 목록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아이오닉5, EV6, 코나EV, 니로EV, GV60 등 5개 모델은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로 테슬라와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중국의 거듭되는 경고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의 IPEF와 반도체 동맹에 참여한 이유는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정치적 명분이다. 우리나라의 최대교역국인 중국이 본격적으로 보복할 경우 우리 경제와 기업은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공정한 시장경쟁을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미국의 얼라이쇼어링·프렌드쇼어링을 수용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처럼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국을 차별한다면, 얼라이쇼어링·프렌드쇼어링은 유명무실한 말장난으로 끝날 것이다. 동맹과 우방 없는 리쇼어링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동참할 명분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인도가 IPEF의 첫 장관회담에서 필라1(무역) 협상을 탈퇴한 것은 그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추세가 확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은 공정한 시장질서의 수호자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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