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특별 기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스포츠 외교 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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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21C한·중교류협회 회장
입력 2022-08-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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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 양국 관계의 우호와 협력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뜻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각계 저명인사의 깊이 있는 견해가 담긴 글을 본지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은 한·중 양국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고 경제 파트너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함께 많은 역경을 이겨왔습니다.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기고 릴레이에는 한·중 수교 과정의 경험담부터 한·중 교류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린 여러분들의 이야기까지, 양국 수교 30주년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30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가득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에 순응하는 한·중 수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독자들에게 이 글이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김한규 21C한·중교류협회 회장(전 총무처 장관)[사진=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내가 보는 한·중 관계는 오랜 역사 속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서로 배우고 존중하며 교류하는 관계다. 이는 양국이 경제와 문화적으로 독립된 입장에서 교류하며 융합되어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고 교류했던 좋은 이웃과 같은 국가 간 관계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기 한국전쟁에서 부정적으로 조우 됐던 한국과 중국과의 단절은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서울 올림픽 성공을 위해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교 정상화가 추진되며 재개되었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나는 올림픽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미수교 국가들도 올림픽에 참가시켜야 하는 국가정책에 따라 당시 적대국인 중국과 구소련이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해당 지도자들과 소통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한·중관계와 한·소관계 개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모두의 노력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나는 1990년 7월 중국 정부의 요청에 노태우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여·야 국회의원 다수와 함께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중국방문단 단장인 나에게 정중하게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승용차와 복사기 지원을 공식으로 요청했다. 이 내용은 방문단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되었고, 노태우 대통령과 강영훈 국무총리의 적극적 지원과 협조는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성공리 마칠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한·중 관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양국 수교의 길은 더욱 가까워졌다. 이런 측면에서 한·중 수교에 가장 큰 도움은 실제로 중국의 어려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도운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대한 한국의 지원과 그 결정이 아닌가 한다.

한·중은 수교 협상 과정에서 양국 사이의 공식 협상 채널에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관도 많았는데, 이때는 막후 라인을 통한 물밑 접촉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중수교에는 공공외교인 스포츠외교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수교 전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최대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 아시안게임 준비 시기에 중국 정부는 우리에게 협조품목을 아예 지정해서 요청했는데, 구체적으로 경기 운영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과 승용차 200대, 복사기 100대를 요구했다. 승용차는 넓은 베이징(행정구역 서울의 28배)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경기장의 교통수단으로 필요하고 복사기는 경기 결과 등을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내가 귀국하여 좋은 결과를 주도록 노력하겠다는 긍정적인 답을 주니 중국 측은 상당히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귀국 후 이러한 각종 내용을 정부에 보고하여 모두 긍정적인 답을 중국에 주었고, 정부는 바로 실천에 옮겼는데 한국 대기업은 올림픽 기간 이보다 더 많은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와 상의했는데, 나는 ‘어차피 도와줄 바엔 화끈하게 돕자’고 제안했다. 이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각계 지도자 등의 세심하고 적극적인 노력은 역사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한국 정부와 대기업의 도움으로 중국은 그해 10월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고, 이것이 한·중수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개인적 소감에 의하면 한·중수교는 한국과 중국 지도자들의 현실적 필요와 미래에 대한 비전이 만들어낸 한국과 중국의 외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은 한·중수교를 통해 경제적으로 그리고 대북한 문제에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고, 중국은 사회주의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을 위한 시간을 벌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오랜 기간 어렵게 그러나 시대의 부응에 따라 성사된 한·중 수교는 이제 갓 30년이 지났다. 나는 앞으로의 10년의 안정적인 한·중관계 발전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꼭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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