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선의 중국보고] 불안한 베이징 '해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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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2-07-2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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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검사, 7시간 격리, 승차 거부

  • '두더지 게임'처럼 확진자 피해 이동

  • 불확실성 안고 떠나는 출장·여행

충칭시 어링공원에서 바라본 충칭시내 전경. [사진=배인선 기자]

중국 베이징에 온 지 133일째. 드디어 베이징에서 ‘해방’됐다. 지난 3월 베이징으로 발령받은 기자는 그동안 코로나 확산세로 인한 베이징의 준봉쇄 수준의 방역 정책에 넉 달 넘게 발이 묶였다. 7월 들어서야 조금씩 타지로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비로소 출장을 갈 수 있게 됐다. 최근 기자 주위에도 몇 달 만에 베이징에서 ‘해방된 동지’들이 적지 않다. 

해방 후 행선지는 충칭. ‘중국의 4대 화로(火爐)’라 불릴 정도로 무더운 충칭이 요새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있는 도시로 떠올랐다고 한다. 상하이, 베이징, 구이린, 시안 등 여기저기 여름철 인기 관광 도시에서 잇단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여행길이 막힌 탓이다. 충칭행 항공편 옆자리에 탄 중국인 승객도 “원래는 여름 휴가로 쓰촨성 청두를 갈 계획이었으나, 현지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충칭으로 목적지를 급히 바꿨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해방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출발 며칠 전부터 충칭서 하나 둘씩 확진자가 나오면서 혹시라도 해방 계획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충칭 현지인과 실시간 코로나 현황과 방역 정책을 업데이트하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가기 직전까지 베이징 방역 핫라인과 아파트 단지 주민위원회에 충칭에 다녀와도 괜찮은지 확인도 했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을 안고 떠나는 '불안한 해방’이다. 
 

충칭 장베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이 핵산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충칭 장베이 국제 공항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에 설치된 핵산검사소에서 승객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21일 충칭에 도착해서도 기자를 기다리는 건 핵산(PCR) 검사와 7시간의 호텔 격리다. 당일 낮 12시쯤 충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핵산검사 결과가 충칭시 건강코드에 뜰 때까진 호텔 밖에 나갈 수 없다. 음성 증명을 받고 나서 호텔 밖으로 나온 건 저녁 8시쯤.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반나절을 날린 셈이다. 

여기저기서 두더지 게임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확진자 때문에 일정도 수시로 변경된다. 원래는 충칭 현지 유명한 바이주(白酒, 고량주) 기업인 ‘장샤오바이’ 공장을 가려고 했으나, 공장이 위치한 구(區)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충칭에 와서 꼭 가야 할 제팡베이(解放碑)나 훙야둥(洪崖洞) 같은 관광명소도 차 안에서 눈으로만 보고 지나쳤다. 괜히 갔다가 베이징 귀환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발생한 구를 지나갈(經過) 수는 있지만 가서는(去) 안된다는 게 앞서 아파트 단지 주민위원회 권고사항이다. 
 

차안에서 스쳐 지나가며 바라본 충칭시 최대 번화가 훙야둥 모습. 밤 9시 늦은 시각까지 거리에 사람들이 붐빈다. [사진=배인선 기자]

차안에서 바라본 충칭시 야경. [사진=배인선 기자]

비록 확진자가 하루 1~2명씩 발생하곤 있지만 충칭 인구 3200만명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방역이 엄격한 베이징과 비교하면 충칭은 ‘코로나 무풍지대’다. 대다수가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고, 베이징에서처럼 사흘에 한 번 꼴로 핵산검사도 안 받는다. 식당·호텔·마트 등에 들어갈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건강코드를 스캔할 필요도 없다. 기업체나 관광지, 행사장 방문 때만 확인한다.

중국 내 코로나 첫 발발 후 2년 반 동안 충칭시의 누적 확진자 수는 고작 700여명. 코로나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충칭에 전국 방방곡곡 관광객이 몰려오는 이유다. 제팡베이나 훙야둥(洪崖洞) 같은 관광지는 밤늦게까지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충칭에서 사흘쯤 머물며 서서히 코로나 불안에서 벗어날 때쯤, 갑작스레 날아온 베이징 방역 당국의 전화 한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충칭 현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지, 언제 몇 번 받았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3분가량의 통화 끝에 ‘메이원티(沒問題, 문제 없다)’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베이징으로 돌아와서도 긴장의 연속이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핵산검사소로 직행했다. 베이징 건강코드에 찍힌 핵산검사 날짜가 이미 나흘 전이라, 아무 데도 출입이 불가능한 탓이다. 베이징에서는 72시간 이내 핵산검사를 받은 사람만 공공장소 출입이 가능하다.

당장 공항에서 부른 택시 기사가 베이징 건강코드의 핵산검사 날짜를 확인하곤 승차를 거부한다. 실랑이 끝에 충칭 현지서 받은 핵산검사 결과를 보여주자 기사가 비로소 출발했다. 이튿날까지 추가 핵산검사와 건강코드 과거 행적지 확인 등의 번거로운 절차도 거쳐야 한다. 

기자는 해방 후 무사히 귀환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광시자치구 베이하이에 놀러갔다가 현지 코로나 상황이 악화돼 격리된 상하이 주민, 선전에 놀러갔다가 현지 확진자 급증으로 베이징행 항공편이 취소돼 발이 묶인 베이징 주민의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앞에선 일국의 대사도 어쩔 수 없다. 지난 19일 톈진을 통해 중국에 입국한 정재호 신임 주중 대사는 탑승한 항공편 내 확진자 발생으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베이징 관저로 이동하지 못하고 톈진 현지 호텔에서 열흘간 격리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이 차츰 완화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어찌됐든 3박 4일의 불안한 해방이었지만, 그래도 기자는 또 베이징에서 ‘해방’되고 싶다. “해방되고 싶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인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주인공 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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