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바다의 나라 그리스, 진화하는 한국과의 해양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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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 주그리스대사
입력 2022-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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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 주그리스대사 [사진=외교부]

그리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디세우스 엘리티스는 일찍이 저서에서 "그리스를 하나씩 떼어 내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올리브나무, 포도밭, 배(boat)가 된다. 이 말은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그리스를 다시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짧지만 그리스에 대해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

그리스 신화는 '아테네'라는 도시명 유래에 대해 도시의 수호신이 되길 원했던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간 경쟁에서 주민들이 올리브를 선물한 아테나를 선택한 결과라고 전한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포세이돈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에게해를 지나 아테네로 들어오는 선박이 한눈에 보이는 반도의 남쪽 끝 성지에 포세이돈 신전을 세웠다. 언덕 위 보름달을 배경으로 자주 소개되는 바로 그 신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바다가 교역을 멈추는 경계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나아가고 교류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여겼다. 이에 배를 만들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체 문명을 발전시켰다. 기원전 5세기 고대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정치인 페리클레스가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강대국"이라고 강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에게해의 그 많은 섬들에서도 특유의 문명을 이루었던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 이전부터 선박을 통해 활발하게 문물 교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 문명의 요람인 그리스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바다를 매개로 한 한국과 그리스 간 인연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 주도 경제개발계획 아래 경부고속도로가 막 개통되고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에 전력을 쏟던 그 시절, 그리스 선주는 아직 대형 선박 건조 경험이 일천했던 한국의 발전 잠재력을 믿고 최초로 26만t급 유조선 2척을 건조해 달라고 맡겼다. 오늘날까지 그리스에서 발주되는 선박 중 과반을 한국 조선사가 수주한다. 신규 선박에 대모까지 세우며 자식처럼 생각하는 그리스 선주의 까다로운 주문을 우리 조선사의 세계적 기술력으로 만족시켜 주고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이러한 협력은 한국이 세계 수준의 조선 국가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스가 전 세계 해운·선박 중 21%(적재중량 톤수 기준)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해운국가로 성장하는 발판도 됐다. 최근 보도를 보면 그리스 선주들이 소유한 배 총 5700여 척 가운데 약 33%를 한국 조선사가 건조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에는 정부 간 약정을 체결해 양국 선박에 상호 해기사가 승선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해운 전문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양국이 손을 잡은 모범적 사례라고 하겠다.

이달 6일 아테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박람회(POSIDONIA)가 2020년 코로나19로 취소된 이후 처음 개최됐다. 총 88개국, 약 2000개사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87개사나 참석해 해양·조선 분야의 국제적 위상을 과시했다. 개막식 축사에 나선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19세기에 바람을 대체해 증기기관을 도입했던 선박 항행이 이제 기후변화 앞에서 다시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스 해양부 장관은 박람회 계기에 개최된 제3차 한·그리스 해양협력포럼에서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선박의 저탄소 배출 시스템 연구개발 등을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길 희망했다. 또 미노아 문명의 발상지이자 지중해 해상 무역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크레타섬의 헤라클리온 항구를 비롯해 주요 항구의 민영화 국제 입찰에도 한국이 참가하기를 조언했다. 이렇듯 바다를 매개로 한 양국 간 협력 대상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그 성과는 언제나처럼 양국 관계 항로에 순풍으로 불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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