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인사이드] 사장단 모임서 정보교환…담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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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06-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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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장기간 가축 사료 가격을 담합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 10곳에 대해 대법원이 실제 담합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수년에 걸쳐 정보를 교환했을 뿐 담합하려는 목적과 의도는 아니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조계는 지난해 12월 관련법 개정으로 앞으로는 정보 교환만으로도 담합이 인정될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와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대한사료와 하림홀딩스, 팜스코, 하림지주 등 4개 회사가 공정위의 시정·과징금납부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업체들 손을 들어준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 의문의 '사장단 모임'···정보공유했나 담합했나
대한사료 등 11개 업체는 2015년 돼지, 닭, 소 등 가축별 배합사료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745억9800만원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제재 대상은 카글애그리퓨리나(카길), 하림홀딩스, 팜스코, 제일홀딩스, CJ제일제당, 대한제당, 삼양홀딩스, 한국축산의희망서울사료, 우성사료, 대한사료 등이다. 두산생물자원은 자진 신고하면서 과징금(27억3600만원)을 감면받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2006년 10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쳐 돼지·닭·소 등 가축 배합사료 가격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를 담합했다고 봤다. 가격 인상 담합은 모두 11차례 이뤄졌는데, 업체 대표이사나 부문장들은 골프장이나 식당 등지에서 '사장단 모임' 명분으로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실제 이들 업체의 배합사료 가격은 유사한 시기에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인상·인하됐고 가격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했다고 봤다. 공정위 과징금 처분에 반발한 10개 업체는 소송을 냈다. 공정위 처분 불복 소송은 2심제(서울고법·대법원)로 진행된다.
 
◆ 대법원, 무죄 판단 유지···"친목도모·정보공유 목적"
대한사료 등 4개 업체 측 소송을 먼저 심리한 1심은 공정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업체들이 수년 동안 연락하며 사료 판매 가격과 인상 계획, 생산·판매량 등 정보를 공유하긴 했지만 이들이 사료 가격을 결정·변경하려는 명시적·묵시적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1심은 "공정위가 가격 합의가 실행됐다고 주장하는 사장단 모임 등은 친목 도모와 사료업체 간 상호 견제를 위한 정보 공유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며 "공정위 제출 증거만으로는 11개사가 공동으로 축종별 배합사료 가격을 결정 또는 변경하려는 합의를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사료 시장 점유율 1위인 농협이 가격 영향력이 상당해 이들 업체가 담합하는 게 어렵다는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1심은 "배합사료 시장은 농업협동조합이 시장원리와 무관하게 배합사료 시장에서 가격 설정에 선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11개 업체가 배합사료 가격을 결정·유지·변경하는 의사의 합치를 이루기 어렵다"고도 설명했다.
 
대법원도 사장단 모임은 정보 교환이 목적일 뿐 담합하려는 목적이나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모임에는 다수 중소업체 임직원들이나 사료 구매 수요자 협회도 참여했기 때문에 가격 인상 등을 합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 지난해 12월 법 개정돼 '담합 추정' 가능할 수도
한편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가격, 생산량, 그 밖에 경쟁상 민감한 정보를 주고받음으로써 일정한 거래 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는 새롭게 담합 유형으로 추가됐다. 또 경쟁사 간 가격 등 경쟁 변수의 유사‧동일한 변화 등 행위의 외형이 일치되고 이에 필요한 정보가 교환됐다면, 공동행위를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가축 배합사료 업체 '사장단 모임' 행위가 법 개정 이후에 적발됐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과 다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공정거래 전문 석근배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기존 대법원 판결의 태도는 정보 교환 행위가 사업자 간 의사 연결의 상호성을 인정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보 교환 사실만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한 합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담합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격, 생산량 등에 관한 명시적이거나 묵시적 합의가 있어야 부당한 공동행위로 봤다"며 "하지만 지난해 12월 개정 법이 시행되면서 정보 교환 합의가 새로운 담합 유형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정보 교환 담합에 대한 법원과 공정위 등의 태도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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