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술은 인류에게 생명의 신비를 밝혀준 현대 생명과학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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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2-06-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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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신화 속의 불로장생식품에는 자연산 형태의 불로초만이 아니라 주스 상태로 만들거나 발효시켜 만든 액체상의 음식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넥타르와 소마 그리고 감로수 아무르타이다. 모두 신들의 음료수로서 서로 연계되어 있고 혼용되기도 하였다. 불사의 의미를 가진 아무르타는 우유의 바다를 천년을 휘저어 얻어 낸 것으로 비슈느신이 가르쳐주었다. 불교로 전파되어 관세음보살이 들고 있는 수정병에는 감로수가 들어있다. 이러한 불로장생수가 아랍권으로 넘어가면서 성령이 담긴 신비의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al iksir"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영약(elixir)이라는 어휘가 비롯되었다. 또한 서구에는 생명수로 이루어진 회춘의 샘에 대한 환상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마시거나 목욕을 하면 다시 젊어진다는 샘의 이야기는 BC 5세기 헤로도토스의 저술에 등장하며, 알렉산더대왕의 정벌, 십자군전쟁을 거쳐 16세기 대양시대가 열리면서 탐험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회춘의 샘 전설은 요한 복음의 베테스다 우물과 연계되어 중세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적이며 실체적 사실로 느끼게 했다. 따라서 중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의 초대총독 후안 퐁세 드 레온은 원주민들에게 전설로 전해져 온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와 불로촌 비미니를 찾아 나섰다. 진시황의 불로초 탐구에 버금가는 불로장생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이 나선 역사적 사건이다. 이와 같이 면면히 이어져온 생명수 개념은 선사시대부터 술로 집약되어 인간에게 생활의 일부분으로 표출되어 왔다.
 
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와 유물에도 포도주와 맥주를 조제한 흔적이나 기록이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대지의 풍작을 관장하고 각지에 포도 재배와 양조법을 전파했으며, 이집트신화의 오시리스는 보리로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쳤고, 구약성서에서는 노아에게 하느님이 포도 재배 방법과 포도주 제조방법을 전수했다고 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신석기시대 황하문명 유적지에서 당시 사용하였던 용기가 다량 발굴되었는데 그중 4분의 1이 주기(酒器)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술이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술에 대한 학술적 논란은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식품이 발효되는 과정을 성숙(fermentation, zymosis), 부패되는 과정을 죽음(putrefaction, sepsis)에 비유하고 물질의 본질이 변화된다고 하였다. 기본 4원소인 물, 불, 흙, 공기로 구성되어 있는 물질이 발효과정에서 제5원소(quinta essentia)인 영(靈, psyche)을 받아 차원이 다른 형태로 승화되며, 이 과정이 지나면 부패하여 식초와 같은 산으로 바뀌어 죽음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옛사람들은 사람의 기분을 고양시키고 고통을 잊고 환희를 맛보게 해주며, 일상과는 전연 다른 상태로 바꿔 놓는 혼(魂)이 술에 들어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술에 생명수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혼이 들어있는 액체라는 뜻에서 술을 aqua vitae, spirit (영), esprit (불), spritus (라틴) 또는 uisce beatha (스코틀랜드)라고 불렀다. 곡식이나 과일로부터 술을 빚는 과정은 오직 하늘의 뜻, 영혼의 작용에 의하여서만 가능하다고 믿어져 왔으며 그러한 술에는 그러한 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왔다.
 
술을 마시면 인간의 행태가 달라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술을 마시면 단순히 기분이 고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접신(接神)이 된다고 믿었다. 신을 초대하기 위해 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동서양 모든 제례에 반영되어 있다. 인도의 베다 시대에는 소마주를 빚어 신에게 바쳤고, 가톨릭에서는 포도주가 예수님 피의 상징이라 하였고, 동양에서도 제사에서 헌작(獻酌) 절차를 중시하였다. 한편 도교에서는 음주를 통한 일탈을 강조하여, 술에 의한 다양한 실수에 대하여 정상적 인간 상태가 아닌 접신 상태에서 벌어진 일로 간주하여 이를 관용하는 관습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술의 신비한 효능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민속적으로 술에 약초나 특정 동물을 장기간 보존하여 추출한 술들이 특별한 효력을 가질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하였다. 이와 같은 술로 표출되는 신비주의적, 정령주의적 사고방식은 중세시대까지 신앙과 철학의 대종을 이루었으며 제도적으로 인간의 생활 속으로 밀접하게 파고들었다.
 
여기에 획기적 사건은 뷔흐너(Edward Büchner)박사의 등장이다. 그는 술의 발효과정에는 반드시 혼이 깃든 생명체가 있어야만 한다는 통설을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 혁파해 버렸다. 술을 빚기 위하여 필요한 누룩으로 대표되는 효모들을 마쇄하여 가루로 만들어 버린 다음 이들을 곡물에 처리해도 술로 발효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발효과정에 굳이 생명체가 고유로 간직하고 있는 혼(魂)과 같은 신비한 마력이 없어도 발효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당시로서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학적 원리가 밝혀지면서 곡물이 술로 변하는 과정은 영적인 힘이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효모 속에 들어있는 특정물질이 그러한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반응을 촉매하는 물질을 효모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물질, 즉 효소(酵素, enzyme, in + yeast)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효소는 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생체 내 대사의 모든 단계에 작용하여 음식물을 섭취하여 분해 소화하여 에너지로 바꾸어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생체를 성장 유지하게 하는 생명현상의 결정적 주춧돌 요인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발견은 생명의 본질에 대하여 신비주의적이고 정령주의적인 사고에 젖어있던 인류에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하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인간을 흥분시키고 몽환에 이르게 하는 술이 생명이 있는 영적 요소에 의하지 않고 구체적이며 물질적 요인인 효소에 의하여 제조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생명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근원적으로 바꾸어버렸다. 바로 술이 발효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건은 생명과학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하는 결정적인 전기를 이루었다. 흔하디 흔한 일상의 한 부분인 술이 현대 생명과학의 원조가 되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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