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Next Korea] '담론'이 죽어가는 양극화 사회 ··· '공존'과 '통합'으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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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환 경기대 교수
입력 2022-05-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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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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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수도권만 잘살고, 경쟁만이 공정으로 인정받는 사회는 결코 행복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 사회를 평가한 말도 없다. 정파를 넘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부겸 총리가 퇴임식에서 한 말이다. 그는 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하면 한 진영에 속해야 하고, 우리 진영에서 박수를 받으려면 상대편을 가차 없이 욕해야 한다”면서 “지금 정치를 더 하려면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나쁘다고 해야 한다. 이런 정치를 계속해야 하나?”라고 물음표를 던지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조국 사태, 현 정권의 인사 등에서 보여준 ‘내로남불’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 회담이 결렬되었을 때도 중재의 힘을 발휘해 이들 만남을 주선한 인물도 김부겸 총리였다. 공존의 정치, 통합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정치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총리는 30년 정치 인생을 통해 한국 정치의 가장 고질적인 비합리적 패거리 정치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경험했고, 이를 퇴임하면서 정리한 것이다.

한국 정치가 친노, 친이, 친박, 친문 등 ‘빠’시즘을 토대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증오와 반목의 정치로 변질된 지 오래다. 경제 10대 강국 등 대한민국 외형은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내부는 곪아터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최저 출산율에다 양극화, 성·지역·세대·빈부·정파별 갈등과 대립, 반목이 더욱 심화되면서 우리 공화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원인을 크게 5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인하고 있다. 승자독식인 제왕적 대통령은 직접 수천 명 자리를 임명하고, 간접적으로 수만 명 자리까지 영향을 미치고, 수백조 원에 달하는 예산까지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지지 않고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전·현 정권 모두 총리·장관 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도 마이웨이, 제왕적 대통령 권한으로 임명을 강행한다. 문 정권에서 청문보고서 없이 장관 39명을 임명하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는 지금처럼 반목과 증오의 대립이 없었다. ‘DJP연정’을 통해 수평적 정권 교체에 IMF 극복, 최초 남북 정상회담, 최고 한·일 및 한·미 관계를 관리하던 시대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자서전에서 “김대중 시대가 가장 평화로웠다”고 말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부터 사회 갈등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통합보다 진영 정치에 매몰되었다. 선진국 독일·프랑스는 진정한 협치, 즉 정책과 인사를 나누는 좌우 ‘대연정’과 ‘동거 내각’을 통해 미래로 전진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인류가 민주주의와 번영을 이룩했지만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가짜뉴스, 혐오와 증오 등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고 설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했다. 한국 사회 문제를 진단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 통합의 ‘디딤돌’이 되어야 할 한국 대통령들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적 반목과 대립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전·현직 대통령의 발언은 책임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만흠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이들 대통령에 대해 “책임 당사자가 내로남불 혹은 유체이탈은 아닌지”라고 반문한다. 통합을 위해 가장 책임 있고 노력해야 할 대통령인데 적대적 공생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적대적 정치 공생구조에 기생하는 언론이 갈등과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보수 언론사 기자 출신들은 현 정부에서 한자리를, 반대편에 서 있는 언론사 기자들은 전 정부 혹은 의원 자리를 꿰차고 있다. 어제까지 방송하던 앵커가 오늘 대선 캠프로 옮겨도 방송사 대표가 공식적으로 시청자에게 사과 방송하지 않는다. 시청자보다 정권에 복무하는 작태다. 선거와 정치에서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자 등대이자 심판자인데 오히려 정파 진영의 선수로 뛰고 있다. 그러니 대선 이후 신문 구독과 방송 뉴스 시청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만큼 국민에게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날개가 없는 공영방송의 급격한 추락이다. MBC 등 공영방송에 대한 민영화 논의까지 나온다. 독일에서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tbc의 김어준씨가 편파적인 뉴스를 진행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 강용석 변호사가 공영방송 뉴스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김어준씨는 스스로 하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 공영방송에 ‘내적 자유’라는 원칙이 있다. 공영방송에서 우파 프로그램을 편성하면 반드시 좌파 프로그램도 편성해 여론의 다원화와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사회적 담론의 성숙을 위해서다.

넷째,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의 위력이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정파가 갈려 가짜뉴스를 난발하고 있다. 필자도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 의해 가짜뉴스 피해를 입기도 했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분열적이고 반복적인 황폐한 소음의 메아리 공간”이라고 비판했다. 부족적인 반(半)쪽 공론장이라는 지적이다.

다섯째, 폴리페서의 사이비 지식인 모습이다. 대선 캠프에 교수 수천 명이 줄을 서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전문가로서 대선 후보 부탁을 받고 자문이나 캠프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자리를 위해 줄을 서는 것이 반지성인의 행동은 아닌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폭정>(한국어 번역 책 제목 <공정이라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등장과 선거 승리는 오바마의 능력주의 폭정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오만하게 행동하고 학벌 위주 정치로 트럼프 포퓰리즘 토대를 잉태시킨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과 한국 정치판이 강자들의 이익 정글이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랄프 뢰프케 교수는 “언론, 법조계, 지식인만 바로 서도 히틀러 나치의 부상을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살아 있는 권력에 제대로 비판 기능을 하고, 법조계가 권력의 불법과 불의에 대항해 싸우고, 대학 교수들이 제대로 교육하고 지성으로 반지성과 싸웠다면 나치가 등장할 수 없었다는 가정이다. 우리 정치권·언론·지식인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초기 파시즘 사회’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대한민국이 나락에서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새로운 통합을 위한 ‘거대 담론(discourse)'의 시작이다. 지구온난화로 에너지 전환,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 전환, 미국·EU vs 중·러 경제패권 전쟁으로 공급망 전환 등 ‘멀티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국민 통합이 최우선이다. 2500년 전 현인 소크라테스는 ‘산파술’, 즉 대화를 통해 자기비판과 성찰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오늘날 ‘담론’을 말한다. 프란치스코수도회 관구장을 지낸 윤종일 신부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집단적인 불통 사회에서 상호 인정함으로써 소통을 통해 문제 해결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담론이라고 말한다.

시대적 명령은 새 정치 리더십의 출현과 국민 지지다. 지자체 선거 이후 차기 대선 후보 새 구도가 형성된다. 탐욕의 정치꾼이 아닌 ‘국가지도자(statesman)', 즉 새 비전과 콘텐츠를 제시하는 리더가 부상하기 바란다. 언론의 질적 발전과 공영방송의 혁신이 필요하다. 패거리 정치에 앞장선 방송 프로그램들과 진행자를 하차시키고 새 프로, 새 장르, 새 인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이다. 폴리페서가 아닌 인사이트와 비판 의식을 가진 지성인의 부활이다. 자기 정파 정치인을 비판할 수 있고, 상대 진영의 리더가 잘하면 칭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성인과 언론이다. 독일 중도우파 고급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최근 진보 정당 녹색당 출신 정치인들을 연일 높이 평가하는 기사와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대표 인물이 녹색당 대표 출신인 경제에너지부 로베르트 하벡 장관이다. 그가 러시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독일의 러시아 에너지 종속 문제를 해결해가고, 새 담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 새 공론장과 담론을 기대해 본다. 광주광역시 이혜명 전 정무특보는 “대한민국이 구존동이(求存同異),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때”라고 진단한다. 공존·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김부겸을 국민이 다시 호출할지도 모른다. 



김택환 교수 주요 이력

▷독일 본(Bonn)대학 언론학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중앙일보 기자/국회 자문교수 역임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조직위원장 ▷현 경기대 산학협력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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