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민주당 명분 없는 공천 고집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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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5-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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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어언 두 달 반째다. 일주일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은 깊은 수렁 속에 빠졌다. 시베리아 백곰 러시아는 체면을 구겼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고립을 가속화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두 달여 동안 숨진 러시아 장군만 12명에 달한다. 유럽연합군(NATO) 최고사령관을 지낸 미군 예비역 해군 대장 제임스 스타브리디스는 “현대사에서 장군 전사를 비교할 만한 상황이 없다”며 “러시아군의 무능은 놀랍다”고 비판했다. 이 기간 동안 숨진 병사도 1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푸틴은 전력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조만간 징집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가 맥을 못 추는 이유는 왜일까.

8군단 여운태 장군(중장)과 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명분’으로 압축했다.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보여준 모습은 무기력하다. 전략과 전술은커녕 군수 조달과 전투 계획조차 엉망이다. 여 장군은 “러시아 군인들은 왜 싸워야 하는지를 모른 채 전쟁에 동원됐다. 그러니 오합지졸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러시아군은 싸워야 할 정당성(명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침공 초기 “왜 총을 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이는 러시아 병사 유튜브 영상은 이런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대통령부터 할머니까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그들에게는 가족과 나라를 지켜야 할 명분이 있다.

선거는 전쟁 못지않은 치열한 싸움터다. 전쟁이 피 흘리는 싸움이라면 선거는 총성 없는 격전이다. 둘 다 명분이 있어야 승리한다. 왜 출마했는지 당위성이 분명할 때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 또 유권자들은 그런 후보를 지지한다. 한데 민주당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인식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지는 싸움을 자초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일하다.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인천 계양을 출마설이 제기되는 이재명 상임고문에게는 출마 명분이 있을까. 당사자는 명분을 확신하겠지만 일반 상식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만 옳다는 자기 확신과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확증편향이 맞물린 착각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 당시 당대표 송영길은 정권 교체 실패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민주당 주장대로 흠 많은 윤석열을 상대로 패했으니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렇게 형편없는 후보와 정당에 정권을 내줄 만큼 무능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출마 지역도 뜨악하다. 송영길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줄곧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인천시장과 5선(인천 계양을)을 지냈다. 자치단체장은 지역 살림을 책임지기에 지역 사정에 밝아야 한다. 그런데 줄곧 인천에서 활동했음에도 송영길은 ‘지방선거 승리 견인’과 ‘경쟁력’을 앞세워 강행했다. 서울시민과 인천시민을 우습게 아는 결정이 아닌 다음에야 공감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같은 86세대 김민석 의원은 “적어도 서울 출신으로 정치를 했어야 한다. 그게 상식에 맞지 않으냐”고 쓴소리를 했다. 당내 ‘민주주의 4.0’도 “‘인물 부재론’이라는 아전인수 논리로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하는 건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국민은 오만하다고 여길 것”이라며 적극 반대했다.

명분 없는 출마는 이재명 상임고문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이재명은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는 집권 여당과 지지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도 패했다. 한데 대선 패배 두 달여 만에 총선을 저울질하고 있다니 뜨악하다. 자숙하고 성찰하는 대신 보궐선거에 나서는 그에게서는 어떤 명분도 찾기 어렵다. 방탄복을 입기 위해서라는 비판은 예사롭지 않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수사를 피하기 위해 우회로를 찾는다는 것이다. 송영길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역시 명분 없다. 인천시민들이 공감할지도 의문이지만 명분조차 아리송해 공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박찬대·이성만·정일영·허종식 등 민주당 인천 지역구 의원 4명이 출마를 촉구했지만 공허하다. 이들은 “이재명 고문은 승리를 위한 유일한 카드”라고 했다. 왜 출마하는지 명분도 당위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반향실 안에서 자기들끼리 떠드는 꼴이다. 오히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고언을 새기는 게 당과 지방선거를 위해 이롭다는 생각이다. 조응천 의원은 “대선 패배에 대해 성숙하고 나아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출마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당내에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반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오마이뉴스'가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4월 18~19일)에 따르면 과반(57.5%)이 출마를 반대했다. 찬성은 37.5%에 그쳐 무려 20%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경기 분당을 출마를 상정한 여론조사였지만 우호적인 경기도민 절반 이상이 반대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 출마를 놓고 묻는다면 반대 응답은 더욱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를 떠나는 것에 대해 경기도민도 인천시민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다. 당 지도부에도 “대선 시즌2가 될 수 있다”며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명분 없는 출마는 자칫 당내에 잠복한 계파 갈등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우려도 높다.

싸워야 할 명분이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그렇지 못한 러시아군은 많을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첨단 무기로 무장한들 명분이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이재명과 송영길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도 명분 없는 출마라면 결과는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이긴들 이긴 것일까. 차라리 채이배 비대위원이나 이정헌 선대위 대변인 같은 신선한 인물을 투입하는 게 명분이 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계파와 관성을 뛰어넘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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