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칼럼] ② 상표가 된 대학 "교육과 지식의 공공성 회복'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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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2-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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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대학 - 새 정부, 교육개혁은 이렇게' (2)

[안상준 교수]



 
② 대학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할 때다
 
대학이 위기다. 일부 대학은 사라질 예정이고, 또 일부 대학은 국민에게 외면당한다. 내일의 대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금껏 필자가 보아온 대학과 같은 모습일까? 변화하는 우리 대학을 예측하기 전에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살펴보았다. 필자의 시선에 세 가지 흐름이 잡혔다.
 
장면 1. 10월이 되면 언론에서는 늘 '왜 한국인은 노벨상(평화상 제외)을 수상하지 못할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때마다 여론의 시선은 대학을 향하고, 연구 역량에 관한 온갖 평가가 뒤따른다. 그런데 지난 25일 일본인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교수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속 시원히 밝혀 주었다. “노벨상은 독창성을 중요시합니다. 단시간에 성과가 나오는 연구나 세간의 관심이 높은 연구가 아니라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만 노벨상을 노릴 수 있습니다.”
이 진술에는 노벨상 미배출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와 ‘지속적인 지원’. 전자는 연구자(대학교수와 거의 일치)의 본분이고, 후자는 국가의 의무다. 필자가 보기에 대한민국 어디선가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가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노벨상 미배출은 대학보다 국가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 국가가 올바른 정책을 편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리라 기대해도 되겠다.
 
장면 2. 지금 대학가에는 ‘메타버스(Metaverse·현실을 초월한 가상공간)' 열풍이 불고 있다. 의학·공학·인문학·예체능 분야를 가리지 않고 메타버스를 활용한 새로운 교수법 창안이 한창이다. 일부 대학은 비대면 온라인 수업의 질적 개선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해 창의공과대학 2층에 200㎡ 규모의 AR·VR 전용 강의실을 구축했다. 포스텍이 발표한 구호는 현란하다. '메타버스 시대에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포스텍을 구축해 메타버시티 완성.'(교육부 공식 블로그)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한 대학교육의 새로운 모습이 전통적인 대학교육을 대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교수와 학생이 실제 공간에 모이지 않고(비대면의 일상화), 휴머니즘에 기초한 근대적 대학교육의 기초가 기술과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 능력(노동력)의 향상으로 이행하는 중이다. 이런 경향에 대하여 벌써 철학자 최재목은 “단순히 기능적·기술적·홍보적 경쟁에서가 아니라 인문적·철학적 안목을 특성화하는 방향에서 대학사회가 메타버스를 수용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장면 3. “한정된 사회·경제적 자본을 나눠 갖는 처절한 쟁투에서 대학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이들을 걸러내는 자격시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합의된 인식이다.” 최근에 출간된 <마지막 지식인>(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펴냄)에 관한 프레시안 서평 기사에서 기자가 드러낸 한국 대학의 인식이다. 그는 한국에서 일찌감치 지식사회를 독점한 “대학이 '상표'”가 되어버린 오늘날 과연 “교육과 지식의 공공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묻는다. 그러면서 “정작 대학이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무엇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지식인을 길러내는지는 중요치 않다”고 일갈한다.
기자는 교육과 지식의 공공성을 지향한다. 이상적인 대학의 역할이다. 신자유주의 조류가 휩쓰는 오늘날 대학이 일종의 기업처럼 브랜드로 변하는 현상을 보면서 “사유화된 지식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작업은 결국 깨어 있는 지식인들의 몫”임을 일깨운다.
 
세 장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대학’은 심오한 연구 기능을 발휘하기에 부족하고(1), 신자유주의 조류에 휩쓸려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 채(3), 새로운 단계의 기술 발전의 도움으로 미지의 교육 환경으로 전환(2)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기술의 발달과 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상적인 모델이나 최선의 모습이 있는가? 과거의 상아탑 인식으로 돌아가면 되는가? 요즘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신생 ‘미네르바대학’과 ‘애리조나대학’의 변신 사례가 길잡이가 될 수 있는가? 다양한 의견과 모델이 제시되고 토론이 벌어지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우리는 대학의 진로를 새로이 개척하고 그에 따라 대학의 역할을 다시 설정할 때다.
 
물론 대학의 전환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경제 체제의 이행에 따라 대학의 역할과 기능은 변해 왔다. 원래 대학의 최초 모델은 구성원의 상호 부조와 이익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동업조합이었다. 근대 초 이래 국가 체제와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대규모로 급격하게 진행된 사회 변동과 함께 근대적인 대학 체제가 탄생했다. 전통적인 학문에 더해서 과학과 기술 분야의 학문이 분화했고, 그 비중이 커지자 특화된 공과대학의 설립으로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했다. 20세기 중반 대중사회의 출현은 대중대학을 동반했고, 국가의 재정으로 고등인력을 양성하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세기말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유럽연합의 출범은 전통적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서유럽 주요 국가들(특히 독일과 프랑스)에 새로운 환경을 제공했고, 대학은 환경에 맞춰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중 독일 사례는 19세기 초 이래 유지된 대학 체제를 바꾸고, 대학과 국가의 관계 조정 및 대학교육의 내실화를 다지는 계기를 관찰하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1992년 유럽연합(EU)은 경제적 통합에 합의하여 출범했다. 이에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따라 질적 상승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1999년 ‘볼로냐 선언’은 대학 졸업 후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대학교육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 핵심 사항은 1)학사와 석사로 구분한 학제의 단일화 2)취득 학점의 인증제인 크레디트 포인트 시스템 도입이다. 학사 과정의 도입은 19세기 초 이래 독일 대학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로서, 만년 학생의 양산으로 시장과 괴리된 대학교육이라는 사회적 비판을 해결하는 묘책이 되었다. 이와 발맞추어 2000년에는 유럽위원회가 ‘리스본 전략’을 통해서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한 대규모 재정 확충에 나섰다. 그 결과 연구자 양성 체계를 잡고, 두뇌 유출을 막는 효과를 가져왔다.
 
1945년 이후 대중대학의 확대 속에 독일 정부는 엄청난 재정 부담과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에 고심했다. 대학개혁의 불능과 강의 수준의 질적 결함을 확인하자 정부는 대학 통제권을 포기하고 대학은 예산관리 책임을 떠맡는 대타협을 이루었다. 대학은 외부 인사를 포함하여 의사결정 구조를 합리화했고, 재원 분배에서 경쟁 구조를 창출했다. 나아가 사회적 요청에 따라 대학은 보다 기업적인 마인드로 무장했고,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학 재정의 새로운 원천이 생겨났다. 연구와 강의에서 질적 평가, 양적 안정화 및 질적 개선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생겨났다. 연구와 강의의 질을 측정하는 양적 지표와 규범들이 개발되었고, 유럽 차원과 국가 차원에서 강의를 위한 ‘자격요건체계’가 해당 시기에 맞게 개발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맞아 학사구조 개편과 재정지원 확충 등 교육 인프라의 개선뿐만 아니라 언제나 대학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려는 이념과 대책이 동반된다. 독일 사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연구 역량 강화, 강의의 질적 수준 점검, 질적 향상을 위한 경쟁 체제 도입 등 대학의 정체성과 역할이 무너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비되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자. 대선 국면에서 전국 인문대·사회대·자연대 학장협의회는 기초학문의 붕괴를 우려하는 성명서를 후보 진영에 보냈다. 빈약한 재정,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급감 등이 야기한 재정난으로 대학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왜곡된 평가기준으로 말미암아 기초학문 분야 학과들이 '구조조정'의 우선적 대상으로 퇴출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학장들이 현장에서 연구 환경의 붕괴를 성토하는 나라에서 노벨상은 사실상 연목구어에 가깝다. 더욱이 원천 과학기술 없이 선진국의 선도형 경제 체질로 전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기초학문의 고사 경향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미래 대학을 진단한다. ‘공공선으로서 대학교육’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개인의 출세와 공공선으로서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확산되는 중이다. 지역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새로 생겨나는 지식산업·지식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대학의 존재감은 점점 더 부각될 것이다. 그래도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이제 대학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인식은 구조적인 전환에 직면했다. 우리의 '고등교육법' 제28조는 대학의 설립 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 국가의 재정 지원 의무를 규정하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달에 따른 교육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정책을 부가하면 앞의 세 장면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문제들까지 해결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대학은 늘 새로운 기술과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존재 이유를 증명했고 역할을 떠맡았다. 최재목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대학사회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흡수하며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그 과정에서도 대학의 공공성 유지를 위한 국가의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 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2022) 공저 △교수신문 논설위원,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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