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치권, 사법권에서 많은 검찰개혁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모두 다 필요 없는 말들입니다. 한승헌 변호사님께서 주창하신 법과 양심의 가치와 교훈, 실천,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검찰 제도개혁 논쟁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님의 삶이 대안이라고 믿습니다. 상식을 잃어버린 시대, 변호사님의 빈 공간이 더욱 아쉽습니다." - 함세웅 신부
 

고 한승헌 변호사 [사진=아주경제 DB]

동백림 간첩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 100건이 넘는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호하고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1세대 인권 변호사' 고(故)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의 추모 노제가 25일 열렸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이 간직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 한 변호사의 장례 5일 동안 고인을 마음속 깊이 추모하는 여러 발걸음이 이어졌다.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이하 장례위원회)는 지난 20일 밤 별세한 고인의 장례를 5일 동안 민주사회장(葬)으로 진행했다. 24일에는 추모식을 열고, 장례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발인과 노제를 진행했다.
 
文 대통령 "또 한 분의 어른을 떠나보낸다"
21일 오후 3시께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한 변호사의 빈소를 직접 찾아 국화꽃 헌화 후 잠시 고 한 변호사의 영정을 응시하고서 고인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한 전 원장의 부인인 김송자 여사 등 유족들과 목례를 한 후 "위로 말씀드린다"면서 말을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고인은) 사회적으로도 아주 큰 어른이셨고, 또 우리 후배 변호사들 또 법조인들에게 아주 큰 귀감이 되셨던 분이다"라며 "저를 아주 많이 아껴주셨는데 너무나 애통하다"고 애도를 전했다. 덧붙여 "제가 직접 와서 조문을 꼭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여사는 "네,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한 변호사 빈소 조문을 마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중요한 직책들을 맡으셨지만, 당신은 영원한 변호사였고,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었으며, 후배 변호사들의 사표였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한 변호사와 깊었던 인연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학 4학년 때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어 서대문 구치소에서 감방을 배정받았던 첫날, 한순간 낯선 세계로 굴러떨어진 캄캄절벽 같았던 순간, 옆 감방에서 교도관을 통해 새 내의 한 벌을 보내주신 분이 계셨는데 바로 한 변호사님이었다"라며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로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와 계셨을 땐데, 그렇게 저와 감방 동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과 오랫동안 면회를 못해 갈아입을 내의가 무척 아쉬울 때였는데, 모르는 대학생의 그런 사정을 짐작하고 마음을 써주신 것이 그때 너무나 고마웠고, 제게 큰 위안이 됐다"며 "저를 아껴주셨던 또 한 분의 어른을 떠나보내며 저도 꽤 나이를 먹었음을 실감한다. 삼가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빈다"고 한 변호사를 회고했다.
"한승헌 변호사, 양심이 법보다 우선한다고 말해"
한 변호사의 발인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5시에는 전 민변 회장인 정연순 변호사 사회로 추모식이 진행됐다.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추모식에는 유족과 추모객 등 110여명이 참석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선수 대법관, 함세웅 신부, 명진 스님, 김영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조수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 등도 추모식에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이날 추모식은 민중의례와 추모영상 상영, 약력보고, 추모사, 장사익 소리꾼의 조가, 유족인사, 인사와 헌화 등의 식순으로 진행됐다.
 

4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추모식에서 정세균 전 총리 (두 번째줄 맨 오른쪽), 함세웅 신부(첫 번째 줄 맨 오른쪽), 김선수 대법관(첫 번째 줄 오른쪽 두 번째) 등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도식에서 첫 번째로 조사(弔詞)를 낭독한 함세웅 신부는 "한승헌 변호사님이 검사로서, 변호사로서, 문인으로서, 우리에게 들려주셨던 주제어가 있다. 법과 양심, 법은 무엇이고 양심은 무엇인가"라며 "한 변호사님은 사회적 규범인 법을 따라 과연 법관들과 검찰들이 바로 집행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으셨고 또 법을 넘어서서 양심이 우선한다는 가치를 강조하셨다"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과 여러 활동을 같이한 김선수 대법관은 "변호사님께서는 아무리 암혹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 어느 자리에서나 변호사님이 계신 곳이라면 웃음이 넘쳐났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지라도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라며 "세상은 여전히 한 변호사님의 지혜와 용기와 유머가 필요한 상황이다. 변호사님의 유머를 들으면서 사법개혁 작업에 매진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라고 말했다.
 

4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추모식에서 김선수 대법관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변호사의 차남인 한규무 교수는 유족 인사에서 "저희 집 가훈이 '자랑스럽게 살진 못해도 부끄럽게 살진 말자'는 것이었는데 참 무겁고 무서운 말이었다"라며 "아버님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평생 부담을 안고, 아버님이 사신 것처럼, 안타깝고 애틋한 사람이 있으면 작은 일이라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 전 총리는 "(한 변호사는) 고향 선배님으로 저한테 굉장히 특별한 분"이라며 "우리나라에 여러 훌륭한 분들이 계시지만 한 변호사님처럼 다재다능하고 유연하면서도 정의로운 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까지도 가끔 찾아뵙기도 하고 통화도 하기도 했는데 너무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추도식에 참석한 고인의 전주고 후배 김기만 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은 "한승헌 선생님, 참 스승이 드문 시대에 사회생활 62년이 온통 삶의 귀감(龜鑑)이셨다"라며 "'선한 영향력'에서 아마도 당대의 최고가 아니셨을까. 평생 몸무게가 55kg을 넘은 적이 없었지만 선생님은 한 시대의 거인(巨人) 중 거인"이라고 말하며 한 변호사를 회고했다.
 
​"어두운 시대, 고난과 위험 앞 비켜서지 않는 '어둠 속 등불'"
발인은 이날 오전 6시 50분 서울성모장례식장 12호실에서 진행됐다. 발인에는 가족과 친지 40여명이 함께해 한승헌 변호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고인에게 도움을 받았던 '피고인'들도 자리해 고인을 추모했다. 발인과 서울추모공원에서의 화장이 끝난 뒤 운구 차량은 오후 1시 30분께 노제(路祭)가 열리는 전북대학교 광장에 도착했다. 전북대는 고인이 대학생활을 한 곳이다.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1세대 인권변호사'고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의 발인이 4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북대 광장에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 현대사에 기록된 주요 시국사건들을 변론해온 고인을 기리는 후배 법조인들의 추모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노제는 민변 전북지부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됐다. 전북지방변호사회와 전북대 법조동문회 등은 '고 한승헌 변호사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 한승헌 변호사님의 뜻을 기리겠습니다'라는 추모글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영결식은 30여분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4월 2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광장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 고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추모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첫 순서로 김승수 전주시장이 시민대표로 나와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 시장은 추도사에서 "법조인이 법 조항에만 기댄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며 "부정과 반인권 앞에서는 서슬 퍼런 단호함으로 투쟁했고 민주와 인권의 가치에 온 인생을 바치셨다"고 추모했다.

이어 "아름다운 시인이었고 가슴 뜨거운 인권변호사였으며 우리 모두의 스승이었던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며 "육신은 떠나지만 앞으로도 우리 곁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용빈 민변 전북지부장은 "민변 창립회원이신 고인은 1965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신 이래 수많은 시국사건과 인권변호를 맡아주셨다"며 "어두운 시대의 여러 고난과 위험 앞에서 비켜서지 않는 모습으로 후배와 동지들에게 '어둠 속 등불'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생전 미해결 과제라고 말씀하신 '기본권의 확립과 인간의 존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평등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어 황민주 시민사회단체 대표의 추모사와 김용택 시인의 추모시, 왕기석 명창의 추모곡도 이어졌다.
 

4월 2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광장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 고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추모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오전 9시부터 이곳에서 분향소가 차려진 만큼 헌화는 생략한 채 단체 묵념을 끝으로 노제가 마무리됐다. 고인의 하관식은 오후 4시 장지인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진행됐다.
 
'시국사건 100건' 변호사 故 한승헌, 역사의 뒤안길로
앞서 동백림 간첩단 사건·통일혁명당 사건·민청학련 사건 등 100건이 넘는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은 '1세대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1934~2022)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이 간직한 채 4월 20일 밤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향년 88세.

고인은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현 사법고시) 8회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서울지검·법무부 등에서 근무하다 196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분지(糞地)'라는 책을 써 반공법 위반으로 처음 기소된 작가 사건,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1965)을 시작으로 그의 50여년 인권 변호 활동은 시작됐다.
 

한승헌 변호사는 그가 변호를 맡았던 시국 사건 가운데 가장 황당한 건으로 민청학련 사건을 꼽았다. 1974년 유신 통치에 반대하던 180명의 젊은이들이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이라는 이유로 비상군사재판에 회부되는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자 한 변호사도 변호인단에 참가한다. 당시 군복을 입은 재판관들 앞 오른쪽에 한 변호사가 서 있다. [사진=인터넷 갈무리]

이후 동백림 사건(1967), 통일혁명당 사건(1968), 민청학련 사건(1974), 1·2차 인혁당 사건(1964·1974) 등 군부독재 아래 엄혹했던 시기에 탄압받는 양심수와 시국사범을 앞장서서 변호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한 변호사는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며 '어떤 조사(弔辭)'라는 제목의 수필을 신문에 발표한 뒤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재심 끝에 2017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민주화 이후 고인은 제도권에서 줄곧 '우리 모두의 나라'를 꿈꾸며 국민에 의한 사법 기틀 마련에 헌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도 주도했고,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17대 감사원장으로 임명돼 이듬해 정년퇴임하기까지 공직사회 부패척결에 힘썼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사법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아 사법제도 개혁에 앞장섰다. '국민에 의한 사법'을 강조하며 배심제도 도입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시집 '인간귀향' '노숙' '하얀 목소리'와 자신이 맡았던 시국사건들을 술회한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에세이 모음집 '피고인이 된 변호사' 등 도서 40여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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