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천사'와 '마을 갑질' 사이…어느 건설사 회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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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석 로앤피기자·변호사 김민성 기자
입력 2022-04-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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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에스동서 권혁운 회장, 부산광역시 한 마을 통행로 막아

  • 자신 소유 골프장 인근 마을, 주민 농기계 출입 막아 농사도 못 지어

  • 농지법 위반 의혹, 경찰 수사 착수

부산 기장군 회룡마을의 수십년 된 통행로를 토지 소유주가 쇠사슬과 막대를 이용해 막았다. [사진=부산MBC 영상 캡처]

한 대형 건설사 회장은 여러 곳에 큰돈을 기부하는 등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법원의 재판 내용과 결과 등을 보면 이 인물의 사뭇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최근 부산MBC 보도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 일광면 회룡마을의 수십년 된 통행로가 어느 날 갑자기 쇠사슬과 나무막대 등으로 막혔다. 해당 도로가 사유지라며 토지 소유주가 일방적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통행로를 막아버린 토지 소유주는 부산지역 건설사 회장 A씨였다. A 회장은 지난 2015년부터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과 인접한 회룡마을 일대 농가를 포위하듯 총 3만 3000여㎡의 토지를 매입했다.
 
마을주민들은 갑자기 마을 통행로가 막히는 바람에 농기계와 공사 차량이 다닐 수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법원에 통행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유지라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통행로라는 사실을 알고 (땅을) 취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A 회장은 회룡마을 인근 토지 취득과 관련해 농지법 위반 의혹도 받는다.

농지법 제6조 1항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직접 농사짓는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A 회장은 회룡마을 인근 농지를 매입하면서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지도 않을 뿐 아니라 ‘농업경영계획서’도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A 회장이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에서 A 회장은 배우자의 직업이 농업이라고 적었으며, 배우자가 직접 8700㎡의 땅을 경작하겠다고 작성했다. 하지만 배우자의 영농 경력은 고작 5년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영농 경력을 2016년에도 5년, 2020년에도 5년으로 기재했기 때문이다.
 
또 농업경영계획서상 농업용 장비라고 적어낸 것은 ‘관리기’라고 적힌 정체불명의 기계 한 대뿐이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부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A 회장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MBC 보도에 나온 A 회장의 건설사 홈페이지 [사진=부산MBC 영상 캡처]

'아주로앤피'는 이 보도를 보고 해당 건설사 회장이 누구인지 취재에 나섰다. 보도에 나온 건설사 홈페이지 속 슬로건을 보고 이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하자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건설사 '아이에스동서'가 나왔다. 부산의 작은 마을에서 횡포를 부린 주인공은 아이에스동서의 권혁운 회장이다.
 

아이에스동서 권혁운 회장(왼쪽)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아이에스동서 서울본사. [사진=아이에스동서 홈페이지 캡처]

아이에스동서 측은 지난달 31일 오전 '아주로앤피'와의 통화에서 회룡마을 통행금지 가처분 패소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해당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말해줄 수 없다”며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돌아오면 연락드리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이날 오후에도 권 회장이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홍보팀 관계자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기부천사' 권혁운 회장은 누구?
이 사건의 주인공인 권 회장을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로 검색하자, 권 회장은 곳곳에 기부를 많이 한 '기부 천사'라는 기사가 대거 나왔다.

최근 권 회장은 지난달 강원 삼척·경북 울진 등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 물품과 성금 2억원을 전달했다. 또 지난해 대구시에 2억원, 부산시에 3억원을 기부하는 등 '기부 천사' 이미지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또 대한농구협회장으로서 농구 발전을 위해 10억원을 쾌척하는 등 스포츠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1950년생인 권 회장에겐 ‘망치회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원칙대로 짓지 않으면 모델하우스나 건설현장을 모조리 망치로 부숴버려 붙여진 별명이다. 지난해엔 '2021년 주택건설의 날' 최고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사회적책임경영품질 컨벤션 2021' 시상식에서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상인 ESG경영대상을 받기도 했다. 
 

아이에스동서의 대표 아파트브랜드 '에일린의뜰' [사진=아이에스동서 홈페이지 캡처]

◆2021 재계 70위 아이에스동서… 대표 브랜드 '에일린의뜰'
아이에스동서는 재계 순위 70위의 건설회사로 대표적인 아파트 브랜드로는 ‘에일린의뜰’이 있다.

1989년 일신건설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부산·대구·울산 등 영남권 주택건설 명가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콘크리트 파일, 타일, 도기 등을 만드는 건축자재회사 동서산업을 합병해 아이에스동서로 사명을 변경하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기업분할에 따라 설립된 지주회사 아이에스지주가 55%를 보유하고 있어 최대 주주다.

아이에스동서는 2018년엔 시공능력평가순위 21위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41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하지만 순위 하락에도 아이에스동서의 작년 4분기 매출액은 6463억원이었다. 작년 4분기 시장 기대치 대비 60.5% 많은 영업이익을 냈으며, 올해도 경기도 고양시와 경상북도 경산시 등지에서 대형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아이에스동서가 공사하던 '더블유' 주상복합아파트 58층 높이에서 콘크리트가 떨어져 차량 14대가 파손됐다. [사진=연합뉴스]

그렇지만 아이에스동서 건설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아이에스동서가 건설 중이던 부산 남구 용호동 소재 초대형 주상복합아파트 ‘더블유’ 공사현장 58층에서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지나가던 차들 위로 콘크리트 조각들이 떨어져 앞유리창이 깨지는 등 총 14대가 피해를 입었다.
 

58층 높이에서 떨어진 콘크리트로 인해 깨진 차량 선루프 [사진=연합뉴스]

당시 부산 남구청은 아이에스동서가 제출한 안전진단 결과보고 등을 검토한 뒤 현장관리 소홀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현장 조사결과 거푸집과 건물 사이 틈을 우레탄 폼으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틈을 완벽하게 메우지 못하면서 콘크리트가 흘러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남구청은 시공사가 고층 건물 공사의 특성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중삼중으로 안전조치를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고 판단했다.
 
3개월 전에도 같은 공사현장에서 ‘모르타르’(시멘트와 모래를 물로 반죽한 것)가 인근 GS하이츠자이 아파트로 날려 100여 가구 입주민들이 피해를 봤던 사례가 있었다. 당시 유리창과 외벽에 달라붙은 모르타르를 제거하기 위한 청소가 6일 간 진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 회사 일감몰아주기 논란도

아이에스동서 로고 [사진=아이에스동서 홈페이지 캡처]

'망치 회장'으로 불리며 직원들에겐 원칙을 강조하던 권 회장이지만 가족과 연관된 '비즈니스 문제'에 대해선 그 원칙이 흐릿하다. 지난 2016년 권 회장은 자녀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2005년 권 회장의 아들 권민석, 딸 권지혜씨는 각각 70%, 30%의 지분을 갖고 자본금 5000만원으로 아이에스건설(현 일신홀딩스)을 설립했다.

아이에스건설은 2005년 설립 이후 10년 만에 매출 수천억원을 올리는 대형 건설회사로 성장했다. 이는 아이에스동서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아이에스동서 등 아이에스지주 계열사가 일신홀딩스에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형태였다.
 
또 2016년 당시 기업지배구조 분석 그룹 ‘네비스탁’은 감사보고서를 통해 아이에스건설이 시행하는 대규모 건설사업의 시공사 대부분이 아이에스동서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아이에스동서가 수주한 주요 공사 가운데 관급공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민간 부동산 개발사업의 발주처도 아이에스건설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아이에스건설은 센텀 IS타워 개발사업을 비롯해 울산 호계매곡지구 도시개발사업, 울산 드림in시티 에릴린의 뜰 1·2차, 창원 자은지구 에일린의뜰, 남양주 다산지금지구 에일린의뜰 등 아이에스동서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연이어 추진했다.

아이에스건설의 2015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40배 이상 늘어난 214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400억원을 넘겼다. 2016년에도 매출액 3547억원, 영업이익 1009억원, 2017년엔 매출액 5288억원, 영업이익 1426억원을 거뒀다.

이런 성장에는 국내 부동산 경기 훈풍을 타고 주택분양이 대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아이에스지주와 아이에스동서의 지급보증을 통한 아이에스 건설의 사업 확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당시 평가였다.
 
2018년 아이에스건설은 회사를 투자사업부문과 건설사업부문으로 나누고, 건설사업부문을 아이에스지주와 합병시켰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최대 매출액이 548억원에 불과하던 회사가 매출을 10배 이상 갑자기 올린 뒤, 그룹의 지주사와 합병한 것이다. 

당시 건설사업부 1주당 아이에스지주 주식 17.3주를 배정했다. 아이에스건설 지분 5만2500주(70%)와 2만2500주(30%)을 가지고 있던 권민석·권지혜씨는 아이에스지주 합병 신주를 각각 91만104주(30.6%), 39만44주(13.1%)씩 받으며 지배력을 확보했다. 반면 권 회장의 아이에스지주 지분율은 100%에서 56.3%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네비스탁은 “아이에스동서가 우회지원을 통해 아이에스건설의 리스크까지 부담했다”며 “이는 결국 아이에스건설의 대규모 수익으로 연결됐고, 최대주주인 오너2세들은 66억원이라는 배당 수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 아이에스건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있었지만, 아이에스지주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것은 2021년이기 때문에 권 회장은 당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집단의 공정자산이 5조원 이상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하고 각종 공시의무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으로 간주한다.

◆담합 협의로 수백억 과징금
아이에스동서는 공정위로부터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문 적도 있다.

지난해 6월 9일 공정위는 2009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한국철도공사·국가철도공단·민간건설사가 발주한 54건의 침목 구매 입찰에서 담합한 아이에스동서에 35억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철도용 침목이란 철도 레일을 떠받치고 연결해주는 구조물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이에스동서를 포함한 5개 회사가 2012년 말부터 정기모임을 여는 방식으로 담합을 유지했으며 총 54건의 입찰 중 51건에서 미리 합의된 낙찰 예정자가 입찰을 따낸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기간 낙찰단가는 침목 개당 5만5000원으로 담합 없는 경쟁기간(4만6000원)보다 높았다.

같은 해 7월 아이에스동서는 '콘크리트 파일'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약 178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이에스동서를 비롯한 24개 회사는 2008년 4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콘크리트 파일 판매가격을 책정하는 기준가격을 4차례 올리기로 담합한 후 판매가격을 인상·유지했다.

또 아이에스동서는 2009년 4월부터 2014년 9월까지 건설사가 실시하는 콘크리트 파일 구매입찰에서 다른 회사들과 순번을 정해 물량을 나누기로 하고 견적 제출 때 사전 합의한 기준 가격과 단가율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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