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거대 양당 담합이 초래한 늑장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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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2-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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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예정대로라면 오늘 오후 8시부터 대선 후보 4자 토론회가 열린다. 20대 대선이 34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열리는 늑장 토론회다. 토론회가 늦어진 데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책임이 크다. 두 정당은 토론회 개최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다 끝내 결렬시켰다. 유불리만 따지는 줄다리기 끝에 국민들 알권리는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양자 토론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보름여를 끌다 애초 합의한 토론회(1월 31일)는 무산됐다. 이 과정을 복기하자면 이들이 애초부터 토론회를 개최할 마음이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그 핑계라는 게 참으로 어이없다.

결렬 책임을 두고 두 정당은 상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국민들 눈에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었다. 표면적 이유는 자료 반입을 놓고 충돌했다. 국민의힘은 “자료 반입은 중앙선관위 지침에도 허용돼 있다. 이재명 후보의 말장난을 정확하게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자료는 필요하다. 대장동 검증 의혹을 피하기 위해 양자 토론을 거부했다”며 책임을 돌렸다. 민주당은 “자료 없는 자유토론을 먼저 제안한 건 국민의힘이다. 말을 바꿔 자료 반입을 주장했는데, 답안이 없으면 토론도 못하느냐”고 맞받아쳤다. 자료 반입 여부가 토론회를 무산시킬 만큼 중요한 쟁점이었는지 한심하다.

후보자 자신과 가족 리스크까지 더해진 이번 대선은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듯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비호감도는 60%를 넘나든다. 이 때문에 두 후보는 지지층 지지율마저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보다 낮고, 윤석열 지지율 또한 정권 교체 지지율보다 낮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 지지율과 정권교체 응답률보다 낮다는 건 지지층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양자 토론회는 드러난 의혹을 검증하고 그들이 어떤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는 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런데 어이없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양자 토론은 결렬됐다. 이들에게 최소한 공인으로서 인식이라도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사소한 이유를 들어 불발시킨 저의를 납득하기 어렵다. 둘 다 겉으로만 외장 치는 허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밖으로는 양자 토론을 주장하고 뒤로는 뭉개는 수법에 공모했다. 두 후보는 여러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이재명은 대장동 특혜와 성남FC 찬조금 강요, 형수 욕설 논란, 윤석열 후보는 정책 역량 부족에다 부인 김건희 허위 경력과 무속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국민들은 명확한 답변을 듣고 싶은데 이들은 토론회를 피했다.

소리만 요란한 행태는 특검 공방 과정에서도 이미 확인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후보는 물론이고 지도부까지 나서 대장동 특혜 의혹과 검찰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서로 특검을 외쳤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아예 쌍 특검을 촉구하며 두 정당을 압박했다. 한데 특검 주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누구도 이제는 특검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특검 주장은 국민 관심사에서도 뒷전으로 밀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검을 외면하는 자가 마치 범인인 것처럼 몰아갔던 행태를 떠올리면 이들에게 정말로 특검을 할 의지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국민들은 듣고 싶고 확인하고 싶다. 극단적 지지자들은 지지 후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바꿀 의향이 없겠지만 중도층이라면 다르다.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기에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자기 확신이 있을 때 투표율도 올라간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호감 대선을 만든 장본인이다. 흔쾌히 지지할만한 좋은 후보를 내지 못했고, 또 검증 기회조차 회피하고 있다. 오늘 토론회는 비록 4자 토론이지만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고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갈지 정책을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4자 토론회조차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비난 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책임한 흑색선전과 의혹 제기는 안 된다. 또 잘못 있다면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나아가 내실 있는 도약을 위해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정책마저 제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더불어 성숙한 토론문화를 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평소 토론(討論) 대신 숙론(熟論)으로 바꿔 부르자는 최재천 교수 제안은 의미심장하다. 최 교수는 “우리 토론문화는 상대를 제압해야겠다는 결연함이 지배한다. 그러나 토론은 내 것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는 말로 토론을 정의했다. 그러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귀를 열어 듣고, 내 생각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가 지적했듯 우리 토론문화는 상대를 제압하는 걸 능사로 삼고 있다. 이러니 극단적인 말이 오가고 끝내는 진영대결을 강화한다. 진영싸움을 종식하고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도 토론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토론문화만 제대로 정착돼도 국가의 품격은 올라가리란 생각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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