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외교부 장관(왼쪽)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중 수교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91년 11월 이상옥 당시 외무장관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장관급 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과 독대했다.

이 장관은 양국의 경제 협력 확대를 위해 기존 민간 차원의 무역 연락사무소를 정부 기구로 승격하자고 건의했다. 아직은 민간 방식이 더 좋은 것 같다고 곁을 주지 않는 첸 부장. 

한국은 중국과의 조속한 국교 정상화를 바란다고 이 장관이 한발 더 다가서자 첸 부장은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긴다(水到渠成·수도거성)"는 성어를 대며 슬쩍 피했다.

중국 송대의 문인 소동파가 지인과 주고받은 서신을 책으로 엮은 '답진태허서(答秦太虛書)'에 등장하는 글귀로 '조건이 성숙되면 일은 자연히 이뤄진다'는 의미다. 

임기를 1년여 앞둔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의 피날레를 장식하고자 중국과의 국교 수립에 전력을 기울이던 상황.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읽고 있던 이 장관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고 느긋하기까지 한 첸 부장의 대응은 중국 특유의 외교술. 

중국 측의 기류 변화가 확인된 건 이듬해인 1992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간 중 첸 부장의 기자회견 때다.

그는 한·중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국과의 수교에는 시간표가 없다"는 답을 내놨다. 한국과 어떤 정부간 관계도 없을 것이라던 종전 입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음 달인 4월 베이징을 찾은 이 장관에게 리펑(李鵬) 중국 총리는 또다시 '수도거성'을 언급했다. 첸 부장의 서울행이 한국 측 의사를 탐문하는 행보였다면, 리 총리의 발언은 수교 시점이 무르익었다는 암시였다. 

그렇게 양측은 신속하게 대표단을 꾸려 전광석화처럼 협상을 진행해 나갔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공식 수교했다. 

양국의 국교 정상화는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은 거대한 중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동시에 한반도 내 긴장 완화를 꾀할 수 있었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 가속화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의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대만을 더욱 궁지로 몬 건 일종의 부대 효과. 

한·중 수교를 두고 '유익무해(有益無害)'하다고 한 덩샤오핑(鄧小平)의 평가는 유명하다. 

오랜 금기를 깨고 손을 맞잡은 양국은 수교 후 30년간 호혜 발전을 이뤘다. 

다만 경제나 북핵 문제 등에 있어 더 큰 지렛대를 쥔 건 중국이었다. 양국 관계에서 한국이 좀 더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건 연역적 귀결이다.  

중국 공산당의 특징은 큰 방향성을 설정한 뒤 상황 변화에 맞춰 미세 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미세 조정의 주기는 상당히 길다. 방향성을 훼손할 만한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 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 들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요청해도 녹음기 틀어놓은 듯 비슷한 답만 돌아올 뿐 별다른 진전은 없다. 

북한이 미국 쪽으로 완전히 기우는 최악의 상황만 피할 수 있다면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는 중국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이에 반해 2016년 7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중국 대(對)한국 전략을 수정할 만한 상황 변화에 해당한다.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대응책이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은 물론 한국인의 정서에도 큰 상흔을 남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임인년 새해가 밝으면서 한·중 수교 30주년이 됐다. 수교 뒤 첫 10년이 탐색기였다면, 이후 10년의 밀월기와 10년의 도전 국면이 이어졌다.

올해는 정치적으로 두 나라 모두에 중요한 해다. 한국은 오는 3월에 20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가을에는 중국 공산당이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열고 당 총서기 등 신임 최고 지도부를 구성한다. 

총서기직을 겸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재집권 여부가 관심사다. 중국은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철폐했다.

시 주석이 올해 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재추대되고 내년 국가주석 3연임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시진핑 체제와 함께 지난 10년을 보낸 한국은 같은 체제의 중국과 새로운 10년을 모색하게 됐다. 

과거 10년과 달라진 변수는 미·중 갈등 격화와 2020년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 사태다. 두 변수가 맞물려 글로벌 역학 관계도 요동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 같은 변화를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미·중 간 경제력 격차가 좁혀지면서 미국의 대중 견제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던 중국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한 모습이다.

아편전쟁 직전인 1820년 청나라는 전 세계 GDP의 33%를 차지하는 최강국이었다. 200년 전의 위상을 되찾는 게 목표이고 또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미·중이 격돌하는 외나무다리 한가운데 선 한국 입장에서는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 

기자가 만난 중국 정치계의 한 석학은 전략적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두 강대국을 놓고 어느 한편으로 기우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외나무다리 옆에 작은 다리 하나를 더 놓고 양쪽을 오가는 식으로 미·중 간 상호 이해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여지가 있다. 

중용이나 균형, 전략적 모호성 등의 수식이 난무하는 줄타기 외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가교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는 게 기자의 주문이다. 

정치적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국의 입지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1992년 수교 당시 64억 달러 수준이던 한·중 간 교역액은 2001년 315억 달러로 증가했다. 중국 시장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본 시기다.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2011년 2206억 달러까지 늘었다. 두말할 나위 없는 경제적 밀월 기간이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대상국으로 올라섰다.

2020년 기준 양국 교역 규모는 2415억 달러로 10년 전과 비교해 증가폭이 크지 않다. 

한국이 비교 우위였던 고부가가치 중간재 분야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양국이 윈윈 게임을 벌이기보다 경쟁하는 사례가 많아진 탓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우리의 최대 먹거리 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 중국이 새 경제 발전 전략으로 들고 나온 게 쌍순환(雙循環)이다. 이 또한 미·중 갈등의 산물이다. 

우선 내부 역량으로 핵심기술 자립을 이룬 뒤 자국 중심의 독자적인 글로벌 가치사슬을 구축해 미국에 맞서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그 반작용으로 미국의 경제·기술 제재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한·중 경제 관계가 '경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중국의 쌍순환 전략이 성과를 거두려면 외부의 호응도 중요하다. 가치·산업사슬을 홀로 만들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지난달 중국 내 경제력 6위의 대도시 쑤저우 당서기로 영전한 한 고위 관료는 1년여 전 기자와 만났을 때 "한·중 경제의 원활한 순환은 쌍순환에 동력을 제공한다"며 중국이 그리는 가치사슬 밑그림에서 한국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최근의 요소수 파동에서 드러났듯 대중 의존도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미·중이 계속 맞부딪치는 한 중국이 한국을 함부로 대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을 향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압박은 구애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중 국교 수립은 지난해 10월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이뤄졌다. 스스로 산둥 노(盧)씨의 후예라고 말할 정도로 중국에 유화적인 정치 지도자였다. 

그는 후일 국무원 부총리까지 오른 첸 부장의 첫 방한 때 "한국 서해안과 산둥 반도는 개와 닭 울음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덕담을 건네며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계견상문(鷄犬相聞)'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이웃을 뜻한다. 

시 주석이 얘기한 대로 "이웃은 선택할 수 있지만 이웃나라는 선택할 수 없다"면 국익을 지키면서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할 터다. 

한·중 관계가 이립(而立)을 지나 불혹(不惑)에 이르렀을 때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미혹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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