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 톺아보기] 치열했던 지역 분할…캐스팅보트는 어느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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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21-12-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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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동선을 보면 전략이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12일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 첫 일정으로 PK(부산·울산·경남)를 방문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29일 경선 승리 후 첫 지역 일정으로 충청을 방문했다. 민주당에 PK는 국민의힘의 표밭을 허물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에서 얻는 1표는 2표의 가치가 있다. 국민의힘에 있어 ‘충청’은 중원을 차지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윤 후보의 부친이 충청 출신이라 ‘충청 대망론’을 실현한다는 함의도 있다.
 
지역감정에 기반한 지역 분할 선거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역 구도’는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은 호남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PK를 공략하는 동진 정책을, 국민의힘은 TK와 PK의 인구적 우위를 앞세운 전략을 구사해왔다. 박정희(이후 전두환·노태우)의 TK, 김영삼의 PK, 김대중의 호남, 김종필의 충청 등 지역 구도가 정립돼 왔기 때문이다. 1990년 3당 합당(노태우·김영삼·김종필) 이후 민주당의 전략은 ‘공성’, 국민의힘의 전략은 ‘수성’이었다. 역대 대선, 각 지역의 민심이 어떻게 흘렀는지를 정리했다.
 
◆탄핵 직후 2·3위 싸움, 결정지은 것은 홍준표의 ‘동남풍’
 
탄핵 직후 치러졌던 19대 대선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위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15% 이상 앞서면서 승리를 거뒀다. 문 후보는 대구·경북(TK), 경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를 휩쓸었다. 사실상 1위가 정해진 선거였고, 2·3위 싸움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2·3위 싸움의 승부처는 PK, TK와 호남이었다. 홍 후보는 선거 당시 ‘동남풍이 분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부산·경남 지역에서부터 TK를 거쳐 수도권까지 자신의 지지도가 오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동남풍은 수도권엔 상륙하지 못했다. 다만 PK와 TK의 한국당 지지층은 단단히 결집했다. 홍 후보는 대구에서 71만4000여표(45.36%), 경북에서 82만7000여표(48.62%), 경남에서 79만여표(37.2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의 표를 끌어내지 못했다. 안 후보는 광주에서 28만7000여표(30.08%), 전북에서 28만5000여표(23.76%), 전남에서 37만8000여표(30.68%)를 얻는 데 그쳤다. 문 후보는 호남에서 60%가 넘는 득표를 했다. 홍 후보는 안 후보보다 TK에서 105만여표를 더 얻었고, 안 후보는 호남에서 홍 후보에 86만여표 앞섰다. 두 사람의 최종 득표수 차이는 85만여표로, TK와 PK에서 선전한 홍 후보가 호남의 표를 이끌어내지 못한 안 후보에 앞섰다.
 
◆양 진영 결집해 치러진 18대 대선…박근혜의 ‘확장’ 전략 성공
 
18대 대선은 양 진영이 결집해 치러진 박빙 선거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577만여표(51.55%)를 얻어 1470만여표(48.02%)를 얻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08만표(3.53%) 차이로 이겼다. 박 후보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먼저 TK가 단단하게 결집했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처음으로 10% 이상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주효했다. 살짝 열세였던 수도권에서도 선전했다.
 
박 후보의 승리 원동력은 TK의 결집이다. 박 후보는 대구에서 80.14%(126만여표), 경북에서 80.82%(137만여표)를 얻었다. TK가 보수정당의 텃밭이라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TK에서 80% 이상의 득표를 이끌어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등 이전의 보수정당 후보들은 대개 60% 후반에서 70% 초반 득표에 그쳤다. 호남에서의 선전도 한몫했다. 박 후보는 광주에서 7.76%(7만여표), 전북에서 13.22%(15만여표), 전남에서 10%(11만여표)를 얻었다. 보수정당 후보로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를 한 것 역시 박 후보가 처음이다.
 
반면 문 후보는 수도권에서 차이를 벌리지 못했다. 서울에선 51.42%(323만여표)를 얻어 48.18%(302만여표)에 그친 박 후보를 앞섰지만, 경기도와 인천에선 근소하게 뒤졌다. 박 후보는 강원과 제주, 충청, PK 등에서도 모두 승리를 거뒀다.
 
◆‘노무현’ 내세운 민주당의 16대 대선 전략…수도권·충청이 승리 견인
 
17대 대선은 역대 가장 많은 표 차이가 났던 선거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1149만여표(48.67%)를 얻어 617만여표(26.14%)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20% 이상 따돌리며 큰 승리를 거뒀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처참한 패배를 겪었다.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울산, 경기, 강원, 경북, 경남 등에서 더블 스코어 이상의 차이로 졌다. 광주와 전북, 전남에서 80% 가까이 득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6대 대선은 이른바 민주당의 ‘동진 정책’이 빛을 발했던 선거로 알려져 있다. 부산 출신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기존의 강고했던 지역 분할 구도에 균열을 내고 승리를 했다는 것. 그러나 정작 득표수를 따져보면 PK보다는 수도권과 충청의 역할이 오히려 컸다. 16대 대선에서 노 후보는 1201만여표(48.91%)를 얻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1144만여표(46.58%)였다.
 
노 후보는 부산에선 29.85%, 울산 35.27%, 경남에선 27.08%를 득표했다. 15대 대선 때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얻었던 부산 15.28%, 울산 35.27%, 경남 11.04%에 비하면 많은 표를 얻은 셈이지만, 15대 대선이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까지 3자 구도로 치러졌던 점을 고려한다면 극적인 차이라고 보긴 어렵다.
 
노 후보는 광주(95.17%), 전북(91.58%), 전남(93.38%) 등 호남의 압도적 지지, 수도권과 충청에서의 승리를 기반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노 후보는 서울과 경기, 인천에서 모두 5% 이상의 격차로 승리를 거뒀고, 대전에서 15%, 충북과 충남에서 7~8%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노 후보는 이 지역들에서 이 후보보다 87만여표를 더 얻을 수 있었다. PK와 TK에서의 열세를 호남의 압도적 지지로 극복하고, 수도권과 충청의 지지를 얻어 승리할 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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