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제품만 싸게 잘 만드는 데 집중하면 됐는데, 요즘에는 외국 정부의 외교 정책까지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과정을 지켜보며 한 말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완제품 생산 차질을 계기로 자국 내 공급망 확보를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에 재고 등을 포함한 내부 정보를 제출해야 했고, 자동차 부품 업계는 2025년 발효 예정인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에 대비해 현지에 생산공장을 확대하고 있다.

USMCA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들이 무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주요 소재·부품의 75% 이상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처럼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붕괴 외에도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진 것은 최근 재계 1·4위인 삼성·LG그룹이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이 이름을 바꾸기로 한 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최근 각각 삼성글로벌리서치, LG경영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사명에서 ‘경제’를 떼어내는 것이다.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계열사들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두뇌 집단(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사명 변경에는 글로벌 경영환경 분석과 관계사 산업·경영 연구관련 선제적 지원을 통해 삼성의 글로벌 초일류화에 기여하는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소 역시 사명 변경을 통해 그룹 내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고 계열사 경영 진단, 사업구조 관련 자문 등 업무 비중을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 2·3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은 이미 HMG경영연구원, SK경영경제연구소를 통해 계열사의 경영을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싱크탱크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도 내부적으로는 다른 싱크탱크들과 마찬가지로 국내외 경제 분석 외에도 계열사 경영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음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공교롭게도 같은 시점에 이름을 바꾸게 된 데는 글로벌 단위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LG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연간 매출액 기준으로 글로벌 반도체, 생활가전 업계에서 각각 1위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력계열사의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다른 계열사들도 글로벌 1위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가 그룹 싱크탱크 조직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표출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장이 아닌 내용물이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조직이 새로운 이름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명 변경에 맞춰 대대적으로 조직의 역할과 비전을 점검, 의도했던 변화를 끌어내고 더 많은 계열사가 글로벌 1위에 오르기를 기대해본다.
 

산업부 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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